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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식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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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가 요네하라 마리의 세계음식기행 '미식견문록' 번역 출간
 음식에 관한 문화적 배경과 역사를 소개한 지식인의 세계음식 기행 ‘미식견문록-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마음산책, 1만2000원)이 나왔다.

 책은 식습관, 새로운 식품의 등장, 음식을 둘러싼 종교적 금기나 계급 차이, 문명 간 교류 등의 음식사를 조목조목 소개한다. 또한 음식은 사람과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재미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유쾌하게 증명한다.

▲하루 일곱 권을 ‘읽어치운’ 독서가 요네하라 마리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요미우리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에세이스트, 러시아 주요인사의 방일 때마다 수행 통역한 일류 동시통역사, 하루에 7권씩 읽어치운 책들을 기록한 서평집 ‘대단한 책’의 저자,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올가의 반어법’을 쓴 소설가이다. 게다가 어느 한 가지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방대한 이력에 독특함을 더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어린 시절의 경험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1960년대, 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로 이주해 외국인 친구가 대다수인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이(異)문화를 접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적 차이를 깊이 있게 통찰한 글을 써왔다. 그리고 이 책 ‘미식견문록’의 출간으로 저자는 ‘미식 에세이스트’라는 이력을 하나 더 보태게 되었다.

 그는 ‘맛있는 것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고, ‘먹기 위해 사는’ 사람으로 대식가 가문에서 엄청난 먹성을 물려받은 ‘냠냠공주’(저자의 별명)다. 또 어린 시절부터 세계를 드나들었기에 개구리, 뱀, 곰의 발, 사슴 코 등등 먹어본 음식의 폭 또한 다양해 미식 에세이스트로서는 훌륭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미식견문록’은 음식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저자가, 자신의 경험은 물론 음식에 관한 동서고금의 얘깃거리와 속담, 문화사까지 아우른 37편의 음식론이다. 책 곳곳에 스며든 저자 특유의 농담에 쿡쿡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이 대단한 독서가가 꼼꼼히 안내하는 지식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읽어치우기’에 탐닉하던 지식여행자가 이번에는 ‘먹어치우기’를 주제로 인문학적인 지식을 곁들여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것이다.

▲모든 음식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

 음식은 역사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며, 어느 음식에나 그에 관한 문화적 배경―식습관, 새로운 식품의 등장, 음식을 둘러싼 종교적 금기나 계급 차이, 문명 간 교류 등―이 들어 있다. ‘미식견문록’ 역시 이러한 음식사를 조목조목 소개한다. 코스로 나오는 프랑스 요리의 서비스 방식이 사실은 러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거나, 19세기만 하더라도 감자가 ‘악마의 열매’라는 종교적 믿음 탓에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는 언급이 대표적이다.

 눈여겨볼 것은 요네하라 마리가 이 내용들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마리 여사에게 음식과 음식에 대한 공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먹어본 ‘할바’라는 러시아의 과자 맛을 몇십 년째 잊지 못해 ‘할바’와 비슷해 보이는 우즈베키스탄의 과자 ‘할바인타르’, 루마니아의 ‘Loukoum’, 스페인의 폴보론 등의 조리법과 어원을 추적하여 ‘할바의 모든 것’을 밝혀내는 식이다. 이렇듯 음식과 식생활을 살피는 과정에서 어원 조사뿐 아니라 관련 책자, 백과사전, 신문 기사, 인터넷 자료 등 찾아낼 수 있는 갖가지 자료를 풍부히 총망라했다. 자료만 총망라한 것이 아니다. 러일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상 러시아와 일본은 기본이고, 알바니아 등 유라시아 대륙까지 그가 가본 곳 어디에서나 음식에 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다.

또 저자는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 가운데 음식에 관한 대목만은 비상히 기억하는 재주가 있는데, 이 음식들을 먹어보고는 ‘이야기 속 음식’과 ‘실제 음식’을 비교·분석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염소 젖을 먹어본 뒤 강렬한 암내에 실망했다는 이야기며, 일본 민담 ‘모모타로의 기장경단’에 나오는 기장경단의 밍밍한 맛에 낙심했다는 이야기 등은 저자의 왕성한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식생활이라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삶의 서사

 ‘미식견문록’에서 요네하라 마리는 음식이라는 친근한 소재에 발을 담그고,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식가였던 삼촌의 마지막 유언은 저녁 메뉴에 관한 것이었다거나, 라식 수술 뒤 일시적 실명 상태가 된 일본 환자에게 우메보시 도시락을 먹여 눈을 밝혀주었다거나… 음식에 관한 사연들은 끊임없이 솟아난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전하고 싶어하는 것은 에피소드를 넘어, 음식 한 그릇에 담긴 삶의 서사와 시대의 풍경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사람의 정치 성향에 따라 미지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간파하며, 보드카가 러시아 문화에 가져온 변화를 관찰한다. 음식이야말로 사람과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재미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이 매력적인 저자는 유쾌하게 증명해낸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