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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개발 걸림돌' 그릇된 의식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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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개발에 '歷史'가 사라진다]<5>문화재를 지키려면
우리나라는 1999년 문화재관리국이 문화재청으로 승격됐지만 문화유산 관리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과 시민들의 참여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 반해 일본, 프랑스를 비롯한 문화선진국들은 개발에 따른 문화재 훼손과 도난·도굴에 대비해 철저한 안전망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들 국가는 다양한 정책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 문화유산을 지키는 동력으로 삼는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정책 재정비와 함께 시민 스스로 문화재 보호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시민이 한뜻 된 문화 선진국=원주민 유적이 많은 호주는 시민들이 문화유산 보존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국가다. 호주 정부는 1976년 개발에 따른 유적 파괴가 문제가 되자 이를 감시하는 문화유산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8만여명의 시민이 함께하는 ‘내셔널트러스트(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결성된 시민단체)’와 연계해 전통 건축물, 사적 등 수백점의 문화유산을 관리한다. 호주 정부는 단순한 문화재 관리를 넘어 문화재와 연관된 관광상품 개발, 교육, 전시기획을 통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고 있다.

1949년 호류지 화재를 겪은 일본은 이듬해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국가 차원의 문화재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1966년엔 교토 등 옛 도시의 문화환경 보존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고도(古都)보존법’을 만들었다. 2004년 고도보존법을 제정한 우리나라보다 무려 38년이나 빠른 것이다.

일본 정부는 문화재 발굴 조사 중에도 대규모 관광객을 현장에 초대할 정도로 유적을 관광자원화하는 데 신경 쓴다. 여기서 이득을 얻은 해당지역 주민들은 정부와 함께 적극적으로 보존에 참여, 효율적인 문화재 관리에 도움을 준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이탈리아 역시 시민들이 문화재 보호에 적극적이다. 수백년 된 대법원의 외벽 청소 작업이 도시의 풍치를 훼손한다는 주민 반발로 중단될 정도다. 프랑스는 고층건물 건설로 파리 도심의 문화유산이 파괴될 것을 우려해 1980년대 파리 주변에 아예 신도시를 세워 개발과 보존을 절묘하게 공존시켰다.

문화재 도난·훼손 등에 대한 처벌도 다른 범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편이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문물 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손괴·도굴·절도 등 주요 범죄의 형량을 최고 사형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유물 자원보호법’에 ‘500달러 미초과 유물의 훼손·은닉 시는 1년 이하 구금이나 1만달러 이하 벌금, 500달러 초과 유물의 훼손·은닉이나 재범 시에는 2년 이하의 구금 또는 2만달러 이하 벌금, 3범 이상은 유물의 피해 정도와 상관없이 5년 이하 구금이나 10만달러 이하 벌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를 손상·은닉하는 범죄에 5년 이하의 형을 부여한다. 우리나라도 문화재 사범은 중형으로 다스리게 돼 있으나 실제는 범인 검거보다 도난품 회수 등을 우선시해 중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보존 의식 키워야=문화재 관리는 정부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지자체와 국민들의 관심·참여가 있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현장에서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지만 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지방에 산재한 문화재를 관리하는 각 시·도 문화예술과·문화체육과 등에는 보통 5∼6명의 인원이 근무한다. 그나마 문화재 전담이 아니라 다른 일반 행정업무를 겸하고, 인사이동으로 2∼3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다 보니 정책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화재청이 올 초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숭례문 화재 참사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개최한 ‘숭례문-기억, 아쉬움 그리고 내일’ 전시회를 시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 역사학 교수는 “문화재를 제대로 다루려면 경험과 노하우의 축적이 중요하다”면서 “공무원을 채용할 때 관련 전공자를 적극 수혈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를 ‘개발의 걸림돌’로 여기는 그릇된 국민의식을 바꿔 문화재 보존운동으로 연결하려는 노력도 부족하긴 마찬가지. 일본의 시민단체와 학계, 문화계는 1995년 말 신도시 도로건설공사 중 7세기 때의 도로 흔적이 발견되자 앞장서서 공사를 중단시키고 유적으로 보존하도록 했다.

그러나 우리는 1994년 고속전철이 신라 유물의 보고인 경주를 경유하는 문제를 놓고 통과를 허용하자는 일부 주민과 반대하는 고고학계의 의견 충돌로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정부와 국민이 아직 문화재 보존·관리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라며 “정부는 언론과 지역 전시관·박물관 등을 활용해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리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박성준·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