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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오른쪽)과 박용만 ㈜두산 회장(가운데)이 고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빈소에 조문한 뒤 나오고 있다. 송원영 기자 |
그룹 경영에 몸담으면서도 한·이집트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왕성한 대외활동을 했다. 뿐만 아니라 1998년 구단주 출신 최초로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맡아 ‘관선 총재’ 시대를 끝냈으며, 재임 7년간 8개 구단 체제를 유지시키는 등 한국프로야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2005년 동생 박용성씨가 두산그룹 회장에 추대된 데 반발해 ‘형제의 난’을 일으켰고, 사실상 두산가에서 퇴출됐다.
박 전 회장은 당시 신임 그룹 회장이 20년간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내용의 투서를 검찰에 제출해 수사를 촉발시켰고, 이후 수사는 박용오·박용성씨는 물론 오너 일가 전반으로 확대됐다. 박 전 회장 역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드러나 2007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의 판결을 확정받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왜 죽음을 선택했나=약 2년7개월간 절치부심하던 박 전 회장은 지난해 성지건설을 인수하며 부활을 꿈꿨다. 1969년 설립된 성지건설은 주로 토목분야와 소규모 아파트·오피스텔 건설사업에 주력해 왔으며, 작년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는 69위에 오른 중견 건설업체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마포대교 확장공사와 인천문학경기장 건설 등이 있다.
박 전 회장은 사회간접자본(SOC)과 민간투자사업(BTL)을 활성화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와 경영으로 성지건설을 국내 10대 건설사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의 경영 능력도 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한파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상반기엔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4% 줄어든 1086억원, 영업이익은 63% 감소한 18억7000억원이었고 당기순손실로 43억7000억원을 기록했다.
박 전 회장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A4용지 6장 분량의 유서에는 “회사의 부채가 너무 많아 경영이 어렵다. 채권 채무 관계를 잘 정리해 달라”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최근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둘째 아들 박중원씨 등 가족과 지인들을 한명씩 거론하며 안타까움과 뒷일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