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동참·견제·주권행사 등…2009년 팬덤문화가 바꿨다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동방신기와 2PM 사태 거치며 확산

 


[세계닷컴] 2001년 1월 초 한 일간지 기사의 제목은 ''빠순이를 아시나요''다. 이 기사는 당시 여중·여고생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남성그룹 멤버들에게 광적일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모습을 지적하며, 이로 인해 생기고 있는 폐해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나서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금 '팬덤'(FANDOM)이라 불리우는 팬클럽들의 모습은 대상 불문, 형식 불문을 취하며 단순히 한 대상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동참과 견제를 시도하며 '소비자'로서 주권 행사를 하기 이른다.

'일방적 사랑'서 '소비자 주권 찾기'로 변화

2009년 아이돌그룹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연예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이슈가 된 두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남성 그룹 2PM의 리더였던 재범 (본명 박재범)이 연습생 시절인 2005년 미국의 소셜네트워킹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에 한국에 대한 평을 남긴 글이 알려지면서, 결국 재범이 그룹을 탈퇴, 미국 행을 택한 사건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 그룹의 멤버가 불미스러운 일로 그룹을 탈퇴한 일이다. 그러나 이후 '재범 탈퇴'는 2PM 팬들이 움직이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시사 토론에서 거론되기까지 이르렀다.

당시 2PM 팬연합 언더그라운드 측은 각 언론사에 재범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메일과 보도자료를 전달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2PM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측에 2PM CD를 반환하기 시작하는 등 2PM 상품의 불매 운동 및 보이콧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또 일간지 광고를 통해 재범의 2PM 탈퇴 철회 요구와 소속사의 팬들과의 소통을 촉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2AM·2PM 팬사이트 원데이룸에서는  '4년의 기다림, 1년의 비상(飛上) 그리고.. 단 4일만의 추락(墜落)' 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광고에서 '5년간의 모국 생활이 재범을 변화시켰다' 고 강조하고, '아직 배우고 채워나가야 할 것이 많은 청년, 박재범. 그가 대한민국에서 다시 비상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 며 호소했고, JYP 사옥 앞에서 침묵시위까지 진행했다.

프로듀서인 박진영이 재범 없이 2PM 여섯 멤버로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힌 이후, 이들의 2PM을 키운 박진영까지 비판의 대상에 올려 보이콧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결국 재범의 합류 없이 2PM의 활동을 재개했지만, 팬클럽의 이같은 행동으로 인해 2PM은 단순히 연예계 아이돌이 아닌 '민족''국가''소비자''교포 사회' 등등의 단어와 맞춰지면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또다른 사건은 역시 남성 그룹인 동방신기의 세 멤버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가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이하 SM)의 계약조건이 부당함을 주장하며 벌어졌다. 세 멤버는 7월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했고, 10월27일 "동방신기의 의사에 반해 SM이 공연 등 연예활동에 관해 계약을 맺어선 안 된다. 동방신기의 독자적 연예활동에 대해 SM이 이의를 제기하는 등 방해를 해선 안 된다"는 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SM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결국 본질은 인권과 노예계약이라는 말로 포장된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이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들은 최근 중국 심천콘서트 공연 확인서에 기재된 사인 위조 논란까지 벌이며 사실상 결별 수순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낳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동방신기 세 멤버와 SM의 갈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은 80만 회원을 자랑하는 팬클럽 '카시오페아'다. 이들은 사태가 일어난 이후 'SM Ent. 불매운동 안내'라는 공지문을 띄우며 불매운동에 돌입하게 된 사유와 구체적인 불매 품목 등을 적시했다. A4용지 3장 분량의 공지문에서 등장하는 불매운동 사유로는 'SM타운 라이브 09'의 일방적 취소, 팬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시정하지 않는 태도, 동방신기 전속 계약 조항의 부당성 등 3가지가 거론됐다.

카시오페아는 "SM엔터테인먼트 측이 동방신기 세 멤버들의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관계 없이 공연을 개최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동방신기 소송 문제로 이 상태로는 소속 가수간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수 없다'는 이유로 공연 1주일 전 돌연 콘서트를 무기한 연기했다"며 이는 "티켓을 구입한 소비자들에 대한 기초적 배려도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팬들은 또 "팬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제품의 질이나 내용보다는 다수의 제품 출시에 치중하고 유사 콘텐츠를 반복 출시하는 등 모습을 보여 왔고 개선 요구를 무시하며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된 서명운동을 통해 약 18만8000여명의 시민들에게 불공정계약의 강제성과 일방적 계약관계에 반대하는 지지서명을 받아냈고, 가처분신청을 배당받은 재판부에 'SM 불공정계약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계약 이행이 청소년이었던 동방신기에게 전적으로 불리하게 진행되어왔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한 탄원서도 제출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 전속계약서에서 인권의 침해가능 조항이 배제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진정서를 접수했다.

이때문에 동방신기 세 멤버가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일부 인용 결정은 일부에서 팬들의 이같은 활동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이들 두 사건에서 팬들은 자신들이 주권을 가진 '소비자'로서 위치를 자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들이 동경하는 아이돌그룹의 멤버들을 연예기획사에서 내놓은 '동경만 하는'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지대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사람들'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그룹 멤버를 구성하고 각각의 활동, 탈퇴에 대해 팬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들의 요구에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해당 그룹과 엔터테인먼트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기 때문"이라며 사실상 이들 팬클럽의 소비자적 위치를 인정했다.

"연예인의 명예가 곧 우리 명예"

2009년 이들의 또다른 변화는 연예인에게 '우리를 알아주세요'라고 외치던 내용을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알아주세요'라고 대중들에게 호소하고 나섰다는 점과 해당 연예인에 대한 애정을 연예인의 이름을 빌려 타인에게 펼치는 일종의 사회 활동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 홍보를 위해 사면이 비의 얼굴로 뒤덮힌 대형 버스가 운영되고, 미디어 차량 광고와 버스 광고 10여대가 서울과 부산서 11월 동안 선보였다. 그런데 이는 영화 제작사나 홍보사 측이 아닌 전적으로 비의 팬클럽 '구름'과 비나무'에서 진행한 것이다. 또 디시인사이드내 비 갤러리 팬들은 '닌자 어쌔신' 홍보를 위해 언론사에 떡을 보내기도 했다.

또 연예인 팬덤으로는 최초로 서태지 팬들이 NGO 단체 '함께 일하는 재단'과 저소득층 청소년 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이들 팬들은 서태지 생일파티 모금 및 전국투어 기간 동안의 정기 기부자 모집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마련된 기금을 저소득층 청소년 지원을 위한 사용한다. 슈퍼주니어 팬들은 지난 7월 개최된 콘서트에서 쌀, 헌혈증 등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2007년에도 소지섭의 팬들이 소지섭의 모교에 1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고, 성유리 팬들은 성유리가 드라마 '눈의 여왕'에서 근무력증 환자로 등장하자, 근무력증 환자를 돕기위해 성금을 기탁했다.

배우 팬클럽 관계자인 이영우씨는 "팬 연령대가 수입이 생기는 20대 이상으로 넘어가면서 팬 문화도 한층 성숙해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팬클럽과 팬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점차 바뀌고 있지만, 조금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며 변하는 팬문화를 거론했다.

대중음악평론가인 성시권 씨는 "최근 팬들의 영향력이 급증함에 따라 기획사에서는 팬들의 요구를 마케팅에 적극 반영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팬클럽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 팬들의 힘이 90년대 연예계에 비해 점층적으로 권력화되어 가고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팬덤은 팬클럽의 영향력을 조직화 권력화시키는데 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고 지적했다. 

사진=세계닷컴 DB (위 : 슈퍼주니어 팬들이 2008년초 멤버 추가에 대해 반대하는 모습 / 아래 : 동방신기 세 멤버가 MAMA에 출연한 모습)

/ 유명준 기자 neocross@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