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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신비의 고대왕국 대가야의 혼 서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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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철기·가야금 등 찬란한 문화의 꽃피워
4월 8일부터 ‘용사의 부활’ 대가야 체험 축제
가야는 다른 왕국과 달리 우리 역사의 자장에 완벽하게 들어오지 못했다. 승자의 역사 속에서 지워졌던 게 가야다. 시대가 바뀌면서 가야는 사라져서 기억되는 왕국이 됐다. 죽은 왕들의 고장이라고 해도 될 곳이 경북 고령군이다. 이곳은 봄이면 대가야를 추억하는 기억의 의식을 펼친다. 유독 올해는 봄이 문지방을 쉽게 넘지 못하고 있지만, 가야를 기리는 이들이 올해는 더 많아지길 바라며 고령을 찾았다. 고령은 1500년 전 신비의 고대왕국 대가야의 본거지였다. 대가야는 금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와 함께 가야연맹을 이룬 나라다. 고령을 중심으로 번성하면서 후기 가야연맹을 주도했다. 500년 이상 존속했지만, 562년 신라에 복속되고 말았다.

◇철기 문화가 앞섰던 대가야 왕국의 본고장답게 고령을 지키고 있는 대장간.
경주와 부여에서 맛보았던 맑은 공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예년과 달리 황사가 반도 땅을 뒤엎었다는 소식과 달리, 고령은 청명했다. 고령 안내지도를 펼쳐들었다. 고령읍은 거대한 박물관이다. 가야 역사 주제관이라고 해야 할까.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왕릉전시관, 우륵 기념관, 양전동암각화가 눈길을 끈다. 가야가 한반도를 통일했다면 어땠을까. 이곳을 찾는 사람이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난해 문을 연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에는 토기와 철기, 가야금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대가야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났다. 이곳의 4D영상관에서는 대가야는 멸망했지만, 그 정신이 후손을 통해 면면히 이어 오고 있다는 주장을 들을 수 있었다. 대가야왕릉전시관에 들렀더니, 지산동44호분의 내부를 재현한 순장무덤을 볼 수 있었다. 순장무덤을 야생에서 혼자 접했다면 소름이 돋았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역사와 기록으로 다가왔다.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와 대가야박물관을 거쳐 고령읍 주산(310.3m)에 올랐다. 경주의 고분처럼 우뚝 솟은 왕의 무덤들이 산길을 타고 오른다. 고분을 보며 여인의 젖가슴을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어머니의 가슴처럼 포근해진다. 간헐적으로 산을 타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등산객들은 이곳을 지나면서 인간의 삶을 다시 생각할 것이다. 가야의 고분이 역사를 갖게 된 것은 고작 한 세대 전이다. 가야가 역사에서 사라진 것처럼 고분도 사라진 기간이 오래 지속됐다. 조선시대 남명 조식이 1560년대에 고령의 산을 덮은 무덤들을 보고 “산 위에 이 뭣꼬!” 하며 놀랐다는 기록만이 전할 뿐이다. 마을 주민들도 ‘무덤산’이라고 부르며 놀이터로 생각할 정도였다.

◇고령읍 주산의 고분군은 사라진 왕국 대가야를 알려주는 보물 창고다. 이곳에는 다음 세상을 믿었던 권력자와 순장자들의 사랑과 미움도 함께 용해돼 있다.
그러다가 발굴이 이뤄진 때가 1970년대 후반이었다. 44호분이 발굴된 1977년에 고분에는 도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주산에는 순장 묘인 지산동44호분과 45호분을 포함해 20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주산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늘어선 고분 곳곳에서 가야의 숨결을 느낀다. 왕과 귀족의 무덤에서 대가야의 위상을 떠올려 본다.

지산동 44호 분에서 왕과 함께 순장된 이들은 30여명으로 추측된다. 순장자의 신분과 나이는 다양하다. 여덟 살 여아에서 할아버지, 시녀에서 호위무사. 왕과 함께 순장된 이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내세가 있다고 믿는 시대였을지라도 무덤의 어둠 속에서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진다. 다만 순장된 이들의 일부 시신의 두개골에 구멍이 나 있는 게 있다. 죽여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마침 천년의 시간을 이어주려는 듯, 까치 몇 마리가 고분 주위로 날아든다.

고령군은 대가야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다음달 8일부터 나흘간 ‘2010 대가야 체험축제’를 연다. 올해의 주제는 ‘용사의 부활(Return of the Heros)’. 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금관의 위용을 갖춘 왕권국가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의 뜻을 담았다. 대가야의 갑옷과 투구를 만들고, 역경을 이겨내며 왕관을 지켜내는 용사들의 역사재현 극도 접할 수 있다.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고령 5일장의 역사적 의의는 남다르다. 부보상계원 150여명이 남아 있을 정도다. 조선 후기 부보상 단체인 상무사의 맥이 이어지는 고장답다.

철기의 고장답게 대장간을 지켜온 붉은빛을 발산하는 대장장이의 손놀림이 유독 눈길을 끈다. 참나무 숯 용광로에서 호미와 낫 등 온전한 농기구를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의 모습이 아름답다. 고령 5일장은 시골의 봄내음을 체험하기에 좋다.

장의 빈 공터에는 닭을 사고파는 닭전이 들어서 있다. 토종닭들이 장날 분위기를 돋우며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식목일을 한참 앞둔 시장의 한 골목은 묘목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묘목들이 옮겨지면 새로운 땅에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이동 식물원이 따로 없다.

그래도 싱싱한 식물을 보지 못한다면 고령을 여행하는 의미가 반감된다. 벚꽃의 명소인 고령은 딸기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싱싱한 딸기를 따 먹고, 딸기를 수확할 수 있는 딸기수확체험도 마련돼 있다. 딸기수확체험 학부모와 아이에게 인기를 끄는 주요 행사다.

고령=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