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이전의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백인을 우대하는 백호주의 정책으로 아시아 출신들이 배척됐다. 유럽 대륙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주자들은 호주에서 정착하기 힘들었다. 한국인 이주자들은 베트남전쟁에 파견된 기술자 등을 중심으로 소수에 그쳤다.
#2010년 4월, 한인 동포 1.5세인 제임스 최가 덴마크 주재 호주 대사로 임명됐다. 한인 이주 50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고 언론이 평가했다. 50년 호주 한인 이민사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것이라는 평가도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2011년 하반기, K-팝 공연을 요청하는 집단 목소리가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연이어 울려 퍼졌다. K-팝 스타들의 노래와 안무를 연습해 선보인 플래시몹을 통해 한류가 호주 주류사회로 스며들고 있다. 한국을 주제로 내건 영화제와 콘서트가 연이어 열린다.
![]() |
| 지난 7월 호주 시드니의 K-팝 팬들이 한류 스타들의 호주 공연을 요구했다. 그들의 소원이 통했나 보다. 10월과 11월 대규모 한류 공연이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열린다. 오스투존 제공 |
캥거루와 코알라만으로 호주를 말하기 힘든 것처럼 백인만으로는 호주 사회를 설명하기 힘들다. 호주는 백인 주류 사회와 아시아계 이민자 집단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여서다. 21세기의 호주는 그 이전의 이미지와는 그만큼 다르다. 한 세대 전에 백호주의를 폐기한 호주 정부는 이제 다문화다민족 국가임을 내세운다. 화교 등에게 손을 내밀며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일원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호주가 인식되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외국 문화에 대한 그들의 달라진 생각도 엿보인다.
그렇다면, 10년 가까이 서태평양을 달구었던 한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조준길 한국관광공사 시드니 지사장은 “백호주의 눈꺼풀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당위까지는 아니지만, 한류에 대해 인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주류 사회에서 여무는 한국과 아시아호주에서 아시아인은 오랫동안 이방인이었다. 1973년 이민제한 정책은 폐기됐지만, 백인 이외의 다른 인종을 배척하던 문화는 꽤 오래 지속됐다. 한국인 이민사도 이런 분위기를 따라갔다. 이민자들의 삶은 한(恨)의 세월이었다. 백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 삶을 지탱해왔다. 한국은 인도,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과 함께 호주의 아시아계 이민자 집단을 대표한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이민자 집단의 출현은 호주 정부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호주 인구는 2200만명이 채 안 된다. 국민 전체 인구는 세계 50위권을 벗어난다.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 브라질에 이어 세계 6위의 영토 대국치고는 인구가 너무 적다. 600만명에 이르는 이민자들의 중요성은 산술적으로도 드러난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한 나라의 강점으로 자리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아시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한국인 이민자들도 시드니 외곽 위성도시인 스트라스필드의 시장을 배출하는 등 호주 다문화의 든든한 일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 더해 21세기에는 한류가 호주의 아시아 이민자 출신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시드니와 멜버른의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와 K-팝 ‘열광 모드’가 작동된다. 호주의 다문화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아시아 이민자 출신들의 한류 열광은 이제 주류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던 윤성정씨는 “화교와 동남아 출신 이민자를 중심으로 샤이니와 2PM 등 아이돌 스타들의 인기가 높은 편이고, 주류 사회에서도 이런 흐름을 인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중석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동아시아의 한류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호주에서 한류를 인식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동남아에서 한국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호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 |
| 13일까지 멜버른에서 열린 한국영화제의 정식 영화 상영에 앞서 마련된 전야제에 많은 관람객이 모였다. 한국문화원 제공 |
한류를 일상처럼 접할 수는 없지만, 한류가 곧 흐름을 형성할 것이라는 말을 체감하고 싶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달링하버로 달려갔다. 달링하버는 낡은 부두였다가 이제는 시드니 시민들의 낭만 표출 현장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한낮의 맑음과 야경의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곳에는 ‘LG 아이맥스 영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드넓은 호주 대륙도 웅장하게 담아낼 정도로 넓은 스크린은 일반 영화관 스크린의 10배 크기에 이른다. 2003년 LG와 공식 계약을 체결한 이후 지금까지 LG 브랜드를 노출하고 있다. 일본계 영화관이 타이틀을 바꿔서인지 교민들은 더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있다. 외국인들이 LG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한국’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2차원, 3차원 영화를 상영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이곳 영화관에 한국 영화가 스크린에 더 많이 잡힐 날을 기대해본다.
다행히 호주의 공영방송인 SBS에서는 한국 영화를 곧잘 볼 수 있다. SBS에서는 전체 콘텐츠의 50%가 넘는 프로그램이 영어 이외의 언어로 선보인다. 일주일에 선보이는 외국 영화가 평균 26편에 이른다. 한국 영화는 ‘오아시스’와 ‘괴물’ 등을 비롯해 최근 10년 동안 50편 넘게 방영됐다. 매달 1∼2편의 영화가 방영되는 셈이다. 호주에 체류하던 때에 SBS 채널을 찾았다. 운이 좋아서인지 일요일 아침 K-팝 관련 내용을 시청했다. 교민들에게 물어보니 “흔치 않은 일”이라면서도 “앞으로 K-팝의 인기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시드니에 개원한 한국문화원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녁 ‘한국 영화의 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수십명의 관객이 참석하는 정도이지만, 이들이 한국 영화를 알릴 첨병으로 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호주 한국영화제’도 열렸다. 8월 말에는 시드니에서, 9월 중순에는 멜버른에서 ‘아저씨’ 등 모두 20편 가까운 한국 영화가 상영됐다. 영화제를 주관한 김영수 한국문화원장은 “지난해에 비해 3배나 많은 4000명 가까운 유료관람객이 방문했다”며 “아시아계 호주인들의 열정적인 반응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백인 주류 사회에서도 점차 열성팬들이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 |
| 시드니 한국문화원을 찾은 이슬람계 학생들이 서예 교실에 참가했다. 붓글씨를 쓰는 10대 학생들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
당장 올해도 전망이 긍정적이다. 호주의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변하며 온도를 높여나갈 즈음, 이곳의 한류 지수는 더 상승할 것이다.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연이어 대규모 콘서트가 이어진다. 먼저, 다음달 12일에는 멜버른의 야외공연장 ‘시드니 마이어 뮤직볼’에서 MBC 음악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펼쳐진다. 7인의 가수에 더해 YB밴드, 김범수, 박정현, 김연우 등이 참가해 열창을 선보인다. 최대 수용 인원만 1만3200명에 이른다. K-팝 전문 기획사인 오스투존(Aus2one)과 JK엔터테인먼트는 “수십만원에 이르는 좌석 수천장이 팔려나가는 등 사전 열기가 뜨겁다”고 전했다.
이어 한여름인 11월12일에는 시드니가 들썩거린다. 시드니 ANZ 체육관에서 ‘수교 50주년 기념 K-팝 콘서트’가 열린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2AM, 카라 등 10개 공연팀이 참가한다. 뉴사우스웨일스대학 1학년 학생인 미키 림은 “대학생과 10대를 중심으로 K-팝 콘서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며 “한류팬으로 이번 공연은 신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아시아계와 주류 사회의 10대들이 중심이 된다면, 올해 상반기 파리 등 유럽으로 확산된 K-팝 열기가 호주에서도 재확인될 것이다. 호주 자체적으로는 지난 1월 시드니 타운홀에서 열린 ‘슈퍼 K-팝 콘서트 2011’에서 2500명이 참석해 체감한 열기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물론 아직 봄인 2011년 9월 호주의 한류는 아직 뜨겁지는 않다. 그래도 한(恨)의 세월을 살아낸 한인과 아시아계 이주자들에게 지금의 한류는 봄햇살 아래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이다.
![]() |
| 호주 언론에 간헐적으로 실리는 한국 문화 관련 기사. 최근에는 실리는 횟수가 잦아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