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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규 지음/인카운터/1만6000원 |
‘일인지하 만인지상.’ 태조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도운 정도전처럼 정승으로 도드라진 인물도 없었다. 그만큼 부침과 영욕의 세월을 산 재상도 없었다. 고려말 유배지에서 3년을 보내는 등 조정과 괴리가 있던 그의 삶은 나이 42세 무렵에 전환을 맞이한다. 이성계와의 만남을 통해서다. 역성혁명과 반란의 갈림길을 걸었던 정도전은 나이 51세인 1392년 조선 건국으로 화려한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잠시였다. 57세였던 1398년 태조의 셋째아들인 이방원의 중심이 된 제1차 왕자의 난 때 목숨을 잃었다. 그 후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간신과 모신의 대명사로 언급돼 왔다. 명예회복은 조선 고종 재임 당시인 1865년에야 이뤄졌다.
왕조시대를 살았던 곡절 많은 정치인들의 생애는 그가 펼쳐보였던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유배지에서 한양으로, 멸망 왕조에서 새 왕조의 개국 공신으로, 재상에서 간신으로, 최고 실권자에서 반역자로…. 그를 설명해 낼 주제어들은 여럿이다. 그만큼 정도전은 여러 무늬와 결로 해석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그 폭과 깊이는 더해질 수 있다.
신간 ‘조선 최고의 사상범, 정도전’은 700년 역사를 바꾼 혁명가로 ‘비운의 2인자’ 정도전을 바라본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 등을 저술하며 조선의 제도적 기틀을 세웠다. 특히 조선경국전은 제도 정비와 언로 개방에 기여했다. 그런가 하면 ‘고려사’ 편찬으로 멸망한 왕조의 역사를 정리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등을 지낸 경제 관료 출신의 저자는 “정도전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사상가이고 정치가였다”며 “정도전이 마련한 법과 정치적 사상을 통해 조선의 기틀과 민본주의 정신이 다져졌다”고 평가한다.
정도전의 민본사상은 ‘맹자’에 토대를 두고 있다. 맹자를 탐독하면서 민본주의에 눈을 뜨고, 애민사상을 지니게 됐다. 통치권은 하늘에서 부여된다는 사상을 지닌 그에게 백성의 소리는 천명이었다. 민본주의와 애민주의는 정도전 사상을 이해하는 핵심이라는 게 저자의 강조점이다.
‘맹자’를 탐독했던 정도전의 정치 역정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점도 있다. 정도전에게 ‘맹자’를 소개시켜 준 이가 고려말 충신 정몽주였다는 점이다. 귀양살이를 떠나는 정도전에게 전해진 책은 역성혁명의 발판으로 작용했다. ‘한 천재의 혁명이 700년 역사를 뒤바꿔 버렸다’가 부제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