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법화경을 들고 나타났다. 24일부터 6월4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완각 하이퍼 전각 법화경 불광(佛光)’ 전시회를 여는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국당(菊堂) 조성주(61·사진). 그는 1997년 5440자에 달하는 금강경 전체를 새긴 전각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며 한국기네스북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11년간 돌과 옥에 금강경을 새긴 뒤 20폭짜리 병풍으로 완성한 작품은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시회를 열게 된 사연과 그 작품의 뜻을 들어보니 이번에는 더 큰 사고를 칠 모양이다. “이제 거의 불자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웬만한 불자보다 더 정성을 들인 것은 아닐까요.”
부처님오신날(28)을 앞두고 전시회를 열게 된 그는 5년의 세월을 숨죽이며 소리없이 보냈다. 그래서 전시회를 수식하는 부제가 ‘2000일의 고행’이다. 승려 도박 파문으로 어수선한 불교계에 총 5t 무게의 석인재(石印材)에 법화경 전문 7만여 자를 새긴 국당의 2000일 고행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묘법연화경’을 줄여 부르는 법화경은 총 7권, 28품으로 구성돼 있다. 대한불교천태종의 소의(근본)경전인 법화경은 제1 서품에서 시작해 제28 보현보살권발품으로 마무리된다. 이 가운데 스물다섯 번째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은 수지독송(지니고 다니며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소원이 이뤄진다는 뜻이 담겨 있어 불자들에게 널리 읽힌다.
![]() |
| 중심작 ‘해탈’. |
갑작스럽게 닥친 경제적인 문제로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던 국당에게 법화경은 그렇게 다가왔다.
2007년 그에게 법화경을 전한 이는 춤동작 명상가로, 하늘범무단을 이끌고 있는 전수향 단장이었다. 국당은 작업하는 동안 선물 받은 새 법화경을 읽고 또 읽었다. 이제 너덜너덜해졌다. 국당은 법화경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은 외우다시피 했다. 전 단장은 이번 작품의 전시 기획을 맡았다. 이번 작품을 기획하는 취지에 대해 전 단장은 “불교 미술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통해 불교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
| ‘대자비(大慈悲)’. 법화경 28품 중 4개품 1만8883자를 새겨 넣어 중앙, 좌우 등 3단으로 설계했다. 중앙의 석가모니 부처 디자인과 하단의 연좌는 설치 시 조명과 조화를 위해 발광 처리를 한다. 사방 1㎝ 크기의 법화경 말씀이 모자이크 방식으로 선을 그리면서 불상이 형성된다. |
그는 “동서고금을 통해 이런 방식은 발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세계 초유의 설치미술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다”며 지난 5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루 평균 15시간, 2000일 정도 걸린 작품이니 육체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작업하는 동안 술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국당은 한창 작업 중이던 어느 날 전시회가 열리는 한국미술관 맞은편 길에서 사고를 당했다. 갈비뼈 2개가 부러지고 골반도 부러지는 중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다행히도 오른손은 다치지 않았다. 그래서 목발을 짚은 상태로 작업을 계속했다.
한순간 인생을 접으려 했던 그에게 법화경 외에 젊은 시절 홀로 돼 아들 잘 되기만을 바라며 평생을 지낸 어머니가 관세음보살로 다가왔다. 작품의 재료비만 3억원가량 들었다. 초기 경제적인 어려움에 고뇌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첫 작업에 필요한 돌을 사라고 용돈을 모아 저축한 통장을 선뜻 내놓았다. 250만원이었다.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초능력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작품 제목에 초월적인 의미가 담긴 하이퍼(hyper)란 용어가 들어간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괴로움이 환희심으로 변했죠. 이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법화경 전문을 새겨 디자인한 창작 설치작품 대제, 대자비 등 10편과 전각 돌에 음양각을 적용한 창작불화와 기존 불화 석각 설치작품 10편이 전시된다. 전통과 현대적 개념의 석각 설치작품으로 이번 전시회의 중심 작인 ‘해탈’은 가로 10㎝, 세로 12㎝, 두께 2.5㎝의 전각재인 요녕석을 사용한 3t 무게의 대형작이다. 이번 작품 전시 공간은 적어도 50∼70m에 달한다.
“극한 상황까지 생각했던 중생이 환희심을 갖게 된 것은 모두 부처님의 보살핌 덕입니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