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9일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이하 정보보호협정) 체결 직전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은 밀실·졸속 추진이라는 역풍 때문이다. 국회 의견 수렴이라는 모양새를 갖춰 협정 체결의 명분을 쌓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정보보호협정의 당위성보다는 추진 절차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 여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국정 운영에 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체결 연기가 ‘일시 유예’임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우리나라 국무회의와 일본 각의를 통과한 만큼 협정은 언제든지 체결할 수 있다”며 “양국 간 최종 서명은 국회 개원 후 상임위원회 설명을 거쳐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회 상임위 설명 등 절차상 문제를 해결하면 협정 체결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청와대는 그동안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다. 한·미 군사동맹, 미·일 군사동맹은 있으나 한·일 간에는 공식적인 군사협력체제가 없어 대북 대응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과도 맥을 같이한다.
청와대는 이 협정을 추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에 비우호적인 국민 감정을 걱정해 왔다. 국무회의에서 협정을 비공개로 통과시킨 것도 일본 정부와 공식적인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 반발 여론이 일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27일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과 양국 간 과거사 현안은 별개”(김영우 대변인)라며 야당 등의 비판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여론에 밀려 하루 만에 ‘협정 유예’쪽으로 입장을 선회하자 체결을 추진할 동력을 잃은 것이다.
김청중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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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 군사협정 연기'… 靑 갑자기 입장 바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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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볶는 듯한 하루였다. ‘29일 오전 8시 외교통상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보도자료 배포→11시30분 엠바고 요청→오후 2시30분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 체결유예 촉구→3시55분 외교부 체결연기 결정 공식 발표.’일본 도쿄에서는 이날 오후 4시 한·일 대표가 협정문에 도장을 찍을 예정이었다.한국 외교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해프닝이다. 우리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서명 1시간 정도를 남겨두고 “연기할 것”을 통보했다. 국가간 조약이 체결 1시간 전 돌연 취소되는 일은 외교가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외교적 망신살은 이미 뻗쳤다.이날 오전 10시 이 협정이 일본 각의를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체결될 것으로 보였다. 외교부는 오전 8시 일찌감치 협정체결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터였다. 11시 30분쯤에는 “서명식 완료 시점까지 엠바고를 지켜달라”며 협정 원문을 기자들에게 참고자료로 나눠주기까지 했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상황은 오후들어 뒤바뀌었다. 오전까지 “협정을 꼭 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오후 2시15분쯤 세계일보 기자에게 “액션(한·일 간 협정 체결)이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상기류는 이 때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과천에 교육이 있어 갔다왔더니 세상이 바뀌었다”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흘렸다. 상황을 뒤집어 놓은 것은 오후 2시쯤 여의도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했다. ‘국회에서 논의할 테니 서명을 연기하라’는 내용이었다.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이자 친박계의 핵심인 이 원내대표는 협정 추진의 절차가 잘못된 것을 자못 엄히 꾸짖었다고 한다. 김 장관은 즉시 청와대에 연락을 했다. 김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은 오가는 전화를 통해 의견을 나눴다. 결국 오후 3시쯤 이 대통령으로부터 ‘서명 연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한다.29일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앞줄 오른쪽)가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에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연기를 공식 요청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이날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그 시각 신각수 주일한국대사는 김 장관을 대신해 일본 외무성에서 벌어질 서명식장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 외무성 로비에는 협정 서명식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 언론과 도쿄주재 한국특파원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신 대사는 오후 3시15분쯤 서명 대신 일본에 연기를 통보해야 했다. 일본 외무성에 진 친 기자들은 이번에는 연기 내막을 듣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 외교부 당국자가 기자실로 와 무기연기 사실을 발표한 것은 오후 3시55분이었다. 이 당국자는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혼선을 빚은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아리송한 말이다. 그는 “내달 2일 개원 되는 국회가 상임위 구성을 마치는 9일쯤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국민과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007작전하듯 ‘밀실 처리’한 한·일 군사협정 파문은 그렇게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김동진·조병욱 기자 blue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