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뉴스를 시청하다가 막간 여행 광고홍보물의 선전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배고픔’(Hunger)·‘호기심’(Curiosity)·‘길 잃어버림’(Lost), 순간 클래식 음악의 입문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클래식 음악이 이해하기 힘들고 제목부터가 외국어로 돼 있어 낯설다 해도 왠지 알고 싶고 듣고 싶다면 우선 서양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과감히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부터 돼 있어야 한다.
즉 여행에서의 배고픔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끼니 때마다 자국의 음식에 목말라 한다면 과연 그 여행은 즐거울 것인가. 해외여행을 단체로 다니다 보면 며칠 지나기가 무섭게 어느새 한식이 그립고 입맛에 맞지 않는 타지 음식에 비위가 상해 본의 아니게 동행한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례를 본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타지 음식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면 여행의 또 다른 음식 문화의 기쁨을 아쉽게도 놓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 땐 배고플 때까지 안간힘을 쓰며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음식이건 가리지 않고 먹을 수밖에 없다. 팝도 가요도 우리의 가곡도 모두 좋은 음악임에 틀림이 없지만 클래식 음악도 나름 깊이와 사색적 요소가 많아 정서적으로 매우 좋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현지 음식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듯 클래식 음악은 어렵고 복잡할 것이라는 낯섦의 틀을 깨고 용기 있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마음과 머릿속을 깨끗이 정리한 다음 음표로 이뤄낸 명작과 만나볼 채비를 갖춘다. 나라마다 토속적인 맛의 독특함을 음미하듯 클래식 음악도 나라마다 또는 지역마다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맛과 멋이 배어 있는 작품이 산재한다. 익숙한 것만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음식, 새로운 클래식 음악이란 장르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베토벤의 작품을 듣다 보면 그에 대한 궁금증이 유발되고 그의 음악은 물론 인생철학과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까지 관심의 폭이 넓어지고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동시대 작곡자와의 음악 비교, 영향 등 많은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까지 생기게 된다. 호기심은 또 다른 창작을 낳게 하고 판단 기준의 폭을 넓혀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다.
여행안내 책자에는 장소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지도에 의한 완벽한 길 찾기가 표시돼 있어 길을 잃고 실수할 염려가 거의 없다. 그런데 어쩌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길을 잃고 국제 미아로 남을 것 같은 두려움에 가득 차 방황하는 여행자가 돼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이 여행에서의 또 다른 묘미인 길 잃어버림이다.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보물과 마주칠 수 있고 새로운 경험의 낯섦에서 진가를 발견하는 행운을 맛보게 된다.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다 보면 놓치게 되는 것이 종종 있다. 예상 밖의 경험으로 이끄는 여행에서의 특별한 묘미는 낯선 그곳이 또 다른 모험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정통성 있는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 작곡자의 작품에서 살짝 길을 잃은 듯 벗어나 20세기 현대음악을 들을 때 놀라운 충동과 예상치 못한 신선함에 다양한 음악 장르와 접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고상하고 아름답고 장려한 음색에 익숙해진 귀를 흔들어주고 일상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와 맞닥뜨리는 순간의 희열. 이런 일이 바로 여행과 클래식 음악을 탐험하는 지름길이 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행은 일단 떠나야 한다는 것. 클래식 음악도 일단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은희 피아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