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적처럼 한국은 엔저의 최대 피해자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여기저기서 엔저에 대한 걱정이 쏟아지는 이유다. 과장이 섞여 있지만 한국 경제가 엔저 충격을 피해갈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엔·달러 환율은 외생변수다.
언제까지 환율 탓만 할 것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거꾸로 보면 엔고 시기에 수출기업들은 고환율(원화가치 하락) 덕을 톡톡히 봤다. 그때 축적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업체질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은 합리적이다. 환율변동에도 의연할 수 있는 경쟁력 확보야말로 근본적 대책이기 때문이다.
1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외국계 투자은행(IB) 14곳 중 12곳이 달러당 100엔이 넘는 상태가 1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봤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은 내년 초 엔·달러 환율을 110엔, JP모건, BNP파리바,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는 105엔으로 예상했다. 엔화가치를 가장 낮게 예상한 곳은 크레디트스위스로 12개월 후 엔·달러 환율을 120엔으로 예상했다.
엔저 충격은 가시화했다. 당장 여행업계는 엔저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여행수지는 20억4000여만달러 적자로, 7분기 만에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국의 수출은 연 4.1% 줄어든다. 연초 대비 원·엔 환율은 1236원대에서 14일 현재 1094원대로 11% 이상 빠진 상태다.
엔저 걱정이 과장된 측면도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연평균 엔·달러 환율이 110엔,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전체 제조업의 이익감소는 26조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한은 관계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조업 전체 당기순익이 70조원 안팎인데 어떻게 26조원이나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가격경쟁력 강화, 해외생산 증가로 환율변동 충격이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게 한은 분석이다. 게다가 일본 부품 수입이 많은 산업구조상 엔저의 긍정적 효과도 작지 않다.
2006∼2007년 엔·달러 환율이 116∼117엔까지 치솟으며 엔저가 극심할 당시에도 걱정이 쏟아졌지만 정작 한국 수출은 14%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실장은 “엔화약세 영향이 일부 품목에 나타나겠지만, 반도체 단가회복, 하반기 세계 수요 확대로 수출은 완만한 증가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 “기업 자생력 키워야”
엔저를 극복하려면 결국 기업들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엔저가 마치 한국 기업의 생사를 가를 핵심변수인 것처럼 호들갑 떨 게 아니라 엔고시대에 축적한 경쟁력으로 기술혁신 등 비가격경쟁력 강화, 틈새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엔고시대의 일본에 ‘타산지석’이 있다. 2008년 이후 지속된 엔고시대에 도요타자동차는 해외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신기술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위기를 극복했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해외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국경 간 인수합병(M&A) 활용, 글로벌 연구개발(R&D) 전략 등 글로벌화에서 뒤처져 있다. 무협 관계자는 “기업의 글로벌화는 이익 극대화는 물론 국격과 이미지 제고 효과도 크다”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