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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사 교육 이대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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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부재·파행으로 가치 저평가
역사 모르고선 미래 설계할 수 없어
30년 넘게 역사를 공부하면서 들어본 가장 황당한 말은 ‘역사는 고정불변이며 따라서 암기과목’이라는 말이다. 아마 연대, 인명 등 외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나오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수학도 암기과목 아닐까. 구구단 등 외워야 할 정리와 공식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농담이다. 역사도 수학도 암기과목이 아니다.

과거는 불변이다. 하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눈’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니 시대마다 새롭게 역사를 써야 한다. 예를 들면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역사학은 정치사 위주였다. 왕, 귀족, 장군이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의 역할이 커지면서 민중이 새롭게 역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1960년대에는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흑인민권운동과 여권운동 때문에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등장했다. 기존의 역사 연구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흑인과 여성이 역사의 주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래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새롭게 설치할 정도로 박근혜정부는 ‘미래’에 대한 관심이 크다. 하지만 그 미래는 단수가 아닌 ‘복수’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현재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과거야말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의 원천이다. 요컨대 역사를 모르고서는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른바 2007년 교육과정을 통해 고교 역사교육을 강화하기로 하고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를 결합한 ‘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그래 놓고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2009년에 ‘미래형 교육과정’을 하겠다며 ‘역사’를 필수에서 다시 선택과목으로 돌려버렸다.

한국사 교육이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는 사이 젊은이의 역사인식에 심각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안중근 의사(義士)를 병 고쳐주는 의사(醫師)로 알고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6·25와 4·19를 모르는 젊은이도 비일비재하다. ‘민주화’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해 물의를 빚은 어느 아이돌 가수의 실언이나, 북한군이 5·18에 개입했다는 식의 역사날조가 난무하는 우리 현실도 한국사 교육의 정책 부재와 파행에 기인한 것이라고 짐작한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이 연일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어떤 지도자들은 침략 역사를 부인하고 망언으로 아시아의 상처를 들쑤신다. 왜곡된 역사지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극우 정치인을 보면 일본 역사교육의 실태가 궁금해진다.

1995년 이후 일본은 세계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일본사는 선택과목이다. 특이하게도 세계사가 필수, 자국사는 선택이다. 초·중학교의 역사교육이 일본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고교 과정에서 세계사를 보완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재량권을 가진 학교장이 대부분 일본사를 선택하기 때문에 사실상 필수과목처럼 가르치고 있다. 고교 교육에서 일본사와 세계사가 모두 필수과목인 셈이다.

서울대 지원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교생이 한국사를 선택하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우리 교육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우리 교육현장에서 한국사 과목은 ‘말기 암’, 세계사 과목은 ‘사망’ 판정을 받은 지 오래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남의 일처럼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부끄럽지만 역사교육에 관한 한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일본보다 더 끔찍한 역사왜곡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박상익 우석대 교수·역사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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