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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참회, 참 진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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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논란·이념과잉 정치 단절 시동
내부변혁 가속화로 환골탈태 해야
“가정교사로 일하던 젊은 시절, 여제자의 머리핀을 훔쳤다. 머리핀에 박힌 보석이 탐이 났다. 들통이 났을 때 제자 집의 어린 하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났다. 친자식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적도 있다. 너무 소란스럽고 양육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위대한 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부끄러운 인생 고백이다. 사상가들의 롤 모델이었던 루소. 그가 돌연 명저 ‘참회록’(1770)을 통해 젊은 시절 저질렀던 파렴치한 죄를 고백했다.

제 허물을 스스로 들춰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위대한 교육이론가의 명성에 금이 갈 일이었다. 범상치 않은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루소는 “양심을 속이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죄책감에 많이 괴로웠고 깊이 후회했다”고 토로했다.

진정성이 담긴 참회는 감동을 준다. 참회의 눈물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루소의 참회록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다. ‘반성하는 자가 서 있는 땅은 훌륭한 성자가 서 있는 땅보다 거룩하다’는 탈무드의 금언도 같은 맥락이다.

진보진영이 쓴 참회록이 한국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종북 논란과 이념 과잉·독단의 정치에 대한 자성이 골자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안보불안세력, 대기업정규직 대변 정당으로 낙인 찍힌 구태를 벗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모욕하면 국민이 모욕감을 느낀다”고 북한에 돌직구를 날렸다. 전례 없던 파격적인 모습에 놀란 사람이 많았다. 민주당 김영춘 전 의원이 북한의 봉건적 전제정치와 권력세습, 인권문제를 단호히 비판하지 않은 386세대의 과오를 반성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참회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시점과 방향도 잘 잡은 느낌이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내부 변혁의 시동을 건 진보진영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아쉬움이 없진 않다. 진정으로 참회록을 써야 하는 이들이 빠진 탓이다. 종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주체사상파(NL) 출신 386 정치인이 그들이다. 이들이 빠진 진보진영의 참회는 미완성일 뿐이다.

진보진영의 그간 행보는 진보주의자 본래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공존과 이해를 강조하지만 국력을 키운 산업화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남한 군사정권의 독재는 목청 높여 비판하면서도 북한의 전제정치와 3대 권력세습에는 입을 닫거나 비판의 목소리가 작았다. 인권을 보호한다면서 북한인권 문제는 내정간섭이라며 눈을 감았다.

가짜 진보인 종북세력의 국회 진입을 열어준 것은 최대 패착이었다. 표 계산에 눈이 어두워 애국가와 태극기를 인정하지 않는 통합진보당과 어깨동무를 해 국민을 불안케 했다. 총선과 대선, 재보선의 잇단 참패는 국민이 진보진영에 든 회초리였다.

진보진영이 민심을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단 없는 자기변혁이 필요하다. 몇 번의 참회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판단했다면 오산이다. 합리적 진보세력으로 거듭나는 것이 급선무다.

독일 문학가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진보진영이 새겨야 할 명언이다.

균형감이 부족했던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 환골탈태의 첫걸음이다. 무엇보다 또다시 종북주의 세력과 손을 잡아서는 안 될 일이다. 종북세력의 숙주 역할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북한에 할 말은 하고 잘못을 하면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 국회에서 8년째 잠자는 북한인권법 통과에 적극 협조하는 용단을 내리길 바란다. 진보진영의 이미지 변신 효과를 극대화할 호재다.

진보진영의 변혁은 지지자의 외연을 넓히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진보진영의 종북 논란에 실망해 보수진영으로 넘어간 온건개혁 세력을 유인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불리했던 선거전 구도가 유리하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진영의 참회와 변혁은 보수진영 위기의 신호탄일 수 있다. 진보진영은 구각을 깨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안보불안·이념과잉 세력 이미지를 완전히 벗을 때 진보정치의 부활은 가능해지고 집권의 길도 비로소 열릴 것이다.

김환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