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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기적’을 만드는 한국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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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6월이면 지구는 거대한 축구공이 된다. 월드컵의 해에 일어나는 기적이다. 정확히 1년 후 ‘2014 브라질 월드컵’이 개막하면 지구촌은 다시 축구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국 경기가 있는 날엔 대한민국은 온통 붉은 함성으로 뒤덮일 것이다. 4강 신화를 쏘아올렸던 2002년 6월에 그랬던 것처럼 축구공 하나가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할 게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에 첫 출전한 것은 1954년이었다. 스위스 대회였다. 48시간 동안 미군 전용기를 타고 스위스에 도착했다. 고난의 행군이었다. 1진은 먼저 도착했지만, 2진은 2차전을 불과 10시간가량 앞두고 도착했다. 세계 언론도 미지의 팀 한국에 주목했다. 전쟁 직후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미리 현지에 도착해 적응 훈련을 할 수도 없었다. 참가에 의미가 컸다.

월드컵 하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1993년 10월28일 밤의 일이다.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일본-이라크전이 무승부가 돼야 한국이 본선 티켓을 쥐는 상황이었다. 2-1로 이기고 있던 일본은 본선행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종료 10초 전 내준 코너킥 상황에서 이라크의 옴란 살만 자파르에게 헤딩 동점골을 내줘 무승부가 됐다. 일본은 본선무대 진출의 꿈을 접었다. 우리는 ‘도하의 기적’이라 했지만 일본은 ‘도하의 비극’이라고 불렀다.

그제 상황도 20년 전과 비슷했다. 한국은 이란에 0-1로 덜미를 잡혔다. 우즈베키스탄이 두 골만 더 넣었다면 한국의 월드컵 자력 진출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상황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골잔치는 멈췄고 경기는 5-1로 끝났다. 우즈베키스탄과 카타르. 어느 나라에 고맙다고 해야 할까.

한국 축구는 지금 세대교체 중간 단계다. 그런 만큼 감독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홍명보 전 올림픽팀 감독을 포함한 네 명이 감독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답은 나와 있다. 국제 조류를 꿰뚫고 한국 축구의 문제를 정확히 읽는 사람을 뽑으면 된다. 한국 축구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예나 지금이나 신앙에 가깝다. ‘어게인 2002’를 외치면서 학연, 지연에 얽매여 ‘4년 농사’ 망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옥영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