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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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과목당 최대 50만원… 대학 '강의 매매' 여전

학교 커뮤니티 통해 거래 빈번
“미시경제학 15만원, 소득세법 20만원에 삽니다. 쪽지로 연락처 주세요.”

서울의 A사립대가 2016년 1학기 수강신청을 진행하던 지난달 17일 이 대학의 공식 온라인 커뮤니티에 돈을 주고 강의를 사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올린 재학생 B씨는 “될지 안 될지도 모르면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시간 낭비하는 것도 짜증 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원하는 강의를 신청하는 게 쉽지 않자 차라리 수강을 확정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해당 강의를 사기로 했다는 것이다.

학기 초마다 ‘수강신청 전쟁’으로 홍역을 치르는 대학가에서 강의를 사고파는 이른바 ‘강의 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일부터 대부분 대학이 수강신청 변경 기간에 돌입하면서 수강신청에 실패한 학생들이 강의 구하기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각 대학 공식 커뮤니티는 물론 비공식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 같은 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A대의 한 학생이 대학 공식 온라인 커뮤니티에 특정 강의를 15만원, 20만원에 사겠다고 올린 글.
A대 커뮤니티 캡처
강의 매매는 B씨처럼 수요자가 학교 커뮤니티나 시간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생 커뮤니티 등에 글을 올려 공급자를 물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과목당 10만∼50만원에 흥정이 이뤄지며, 휴학생이 여러 강의를 확보한 뒤 강의를 파는 일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 학생들이 시간표를 작성하고 수업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인 타임테이블에는 “강의를 바꿔 주면 사례하겠다”는 식의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간표 서비스 제공 사이트인 에브리타임의 대학별 강의 교환 모임에서도 “사례하겠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졸업에 필요한 전공과목 수강을 신청하지 못한 이화여대 재학생 C씨는 “해당 과목을 듣지 않으면 졸업할 수가 없다”며 “강의를 넘겨주는 사람에게는 사례로 커피 기프티콘을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수강신청 시스템이 단순한 것도 강의 매매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거래가 성사되면 수강신청 사이트 이용자가 적은 새벽 등 서로 약속한 시간대에 강의를 팔 사람이 수강취소를 누르고 곧바로 구매자가 빈 자리를 클릭해 해당 과목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의 매매가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A대학 교무처장은 지난달 ‘강좌의 매매행위에 대한 안내말씀’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2010년, 2012년에도 쪽지를 통한 매매행위를 적발해 공개 사과글 공지를 올리도록 한 적이 있다”며 “향후 강좌 매매 요청이나 실제 거래가 있을 경우 학칙에 따라 엄중 징계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수강신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한정 강좌를 늘릴 수 없다”고 했다.

이에 A대학 학생들은 “강의 수요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목소리를 학교가 외면하면서 수강신청 전쟁이 심화하고 있다”며 분노와 답답함을 표출했다. 최근 구조조정을 한 경영경제대학만 해도 학생 정원은 늘어난 반면 교원은 충분히 충원되지 않아 전공과목 신청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경희대 김중백 교수(사회학)는 “대학 평가 때 전임교수 강의 비율이 중요한데 수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보니 몇몇 대학은 강의를 줄이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며 “그 범위 내에서 최선을 찾다 보니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수요가 나오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진영·정지혜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