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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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로 문지르고 니스칠 쓱쓱…'국기함의 추억'

“초등학교 실과시간에 ‘국기함 만들기’ 아직도 하나요?”

최근 국내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같은 질문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국기함 만들던 게 생각났다”며 “간단한 음식도 만들었는데 요즘에도 이러한 수업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실과는 있지만 국기함 만들기는 없다” “국기함 대신에 다른 걸 만들더라” “요새 국기함 자체를 안 쓰는데 그런 걸 만들 리가 있겠느냐” 등의 다양한 답변이 달렸다.

지금의 3040세대에게 국기함 만들기는 학창시절의 즐거운 추억이다.

등굣길 학교 근처 문방구에서 산 ‘국기함 만들기 재료 세트’를 꺼내 사포를 문질러 나뭇결을 매끄럽게 만들고 망치질을 한 뒤, 작은 병에 담긴 니스를 몽땅 쓰면 어느새 태극기를 고이 접어 보관할 수 있는 국기함이 완성됐다. 직사각형 형태의 국기함을 많이 기억하지만, 종이로 제작되거나 길게 접어 보관할 수 있는 모양의 국기함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기함에서 태극기를 꺼낸 부부. 국기함의 형태가 낯설다. 해당 영상은 1971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KTV 대한뉴스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고사리손으로 만든 국기함은 아이들 곁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1년도 안 돼 없어진 것으로 기억한다”는 어느 네티즌의 추억담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없어지거나 부서지는 등의 여러 이유로 집에서 사라졌다. 태극기가 아닌 다른 물건 보관함이 되어버렸다는 말도 들려 웃음을 자아낸다. 세월이 흐르고 플라스틱 원통형의 태극기 보관함이 등장하면서 나무 국기함은 일부러 재료를 찾아서 만들지 않는 이상 쉽게 볼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오랜만에 본 국기함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자녀와 박물관에 갔다가 학창시절을 테마로 꾸민 코너에서 국기함을 발견한 A씨는 “내가 어렸을 때는 국기함 만드는 게 교과 과정의 하나였는데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렸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반가움을 드러냈다.

 
부천교육박물관이 소장 중인 국기함. 부천교육박물관 제공.


부천시가 운영하는 공립박물관인 부천교육박물관에도 국기함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다녀온 네티즌들도 저마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어렸을 때 집에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하나 만들어놓을까 생각해 본다” “국기함 재료를 문방구에서 팔 정도로 많이 만들었다. 국기를 소중히 다루는 법을 그때 배웠다” “우리 언니가 초등학생 때 망치질하던 게 생각난다” “국기함에 니스칠하던 게 생각난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초등학교 실과 교과서에서 국기함 만들기가 언제쯤 사라졌는지 수소문하던 중, 2000년대 후반부터 실과 교과서를 펴냈다는 한 출판사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이미 국기함 관련 내용을 넣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대 변화와 함께 국기함 만들기법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지 적어도 1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기함을 단순히 태극기 보관함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모(32)씨는 “태극기에 우리 민족의 의식이 깃들어 있는 만큼 국기함도 깨끗하게 관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