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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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사귀는 여성은 모두 추녀” 놀림감 된 여성들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외국인과 어울리는 여성은 상대의 성별을 불문하고 주변(일본 남성)의 교제 상대가 되지 못해 외국인을 찾는다”

일본에서 한 개그맨이 예능프로에 나와 우스갯소리로 말한 것을 두고 ‘여성을 비하했다’는 지적과 ‘현실이 그렇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외국인 사귀는 여성은 모두 추녀”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24일 일본의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이 “외국인과 사귀는 일본인 여성은 추녀가 많다”고 한 것에서 시작된다. 발언의 문제점을 인식한 몇몇 출연자가 ‘(해당 개그맨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서둘러 수습하려 했다. 그런데 같이 출연한 한 여성이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하고, 혼혈인 여성 배우까지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예쁘지 않다”고 덧대면서 분위기가 개그맨의 발언에 동조하는 쪽으로 흘렀다. 일부 매체도 덩달아 해당 개그맨과 출연진의 발언이 시청자들에게 폭소를 자아냈다고 보도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만 댓글 수천건이 달리는 등 찬반 논란이 진행 중이다. 

 

◆놀림감 된 여성들

 

일본에서는 외국인, 특히 백인 남성과 교제하는 여성에 대해 남성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뒤에서 쑥덕거리는 기류가 적잖다. 일부 여성도 맞장구를 치곤 한다. 방송에서도 공공연하게 그런 이슈를 아무렇지 않게 재밋거리로 다룬다. 최근 허핑턴포스트와 동양경제 등 일본 매체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는 아마미야는 이 모습을 보며 “적지 않게 놀랐다”고 우려했다.

 

독일 남성과 결혼을 앞둔 그는 “‘사람(일본 남성)들과 어울리지 못해 홀로 남은 여성이 외국 남성의 관심을 바란 것이다’ 등의 편견은 ‘오래된 고정관념이 더해진 차별의식”이라며 “데이트 초대를 거절하는 여성에게 ‘못생긴 여자’라는 딱지를 붙여 ‘자기방어(자기 위안)’를 하는 일부 남성이 지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마이야 작가는 “외국인 남성과 결혼을 앞둬 (나 역시 자기방어를 하는) 그들의 주장에 따라 ‘못생긴 여자’가 됐다. 하지만 일본인 남성과 교제했다면 ‘예쁜 여자’나 ‘평범한 여자’로 불렸을 것”이라며 “외국인과의 교제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부의 잘못된 시선과 (심지어) 여성들 중에서도 인정되는 분위기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외국인 여성과 사귀는 일본 남성의 경우 ‘인기남’으로 불리며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외국 남성과 일본 여성’조합보다 ‘일본 남성과 외국 여성’ 조합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의 행동에 좀더 관대한 문화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여성과 외국 남성과의 교제를 바라보는 삐뚤어진 시각은 국제결혼이 과거보다 증가한 이유도 있다. 일부 여성은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비판하며 “일본 남성과의 결혼은 또 다른 구속이다.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폭탄선언에 앞선 개그맨과 같은 일부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외국인 만나는 여성은 추녀’ 등 비아냥거린다는 것이다.

 

◆“일본 방송·언론의 윤리관은 과거에 머문다”

 

아마미야 작가는 “일본 방송과 언론의 윤리관은 수십 년 전에 멈춰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상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TV에서는 비만한 이들이나 머리 벗겨진 남성, ‘추녀’라고 불리는 이들을 출연시켜 웃음거리로 만들고, 여성 아이돌 몸무게를 대중에 공개해 눈물 흘리게 하거나 결혼 못한 여성을 아저씨라 부르며 비웃기도 한다”며 “방송에 출연한 사람을 ‘웃음재료’로 생각해 ‘재미’를 추구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싫으면 안 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를 방치하면 더 커질 수 있다”며 “외국인 남성과 교제하는 여성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건 개인의 자유가 아닌 상처 주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