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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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두드려서 자부심을 벼리다 [포토뉴스]

홍재만 금속공예장의 은주전자 이야기

13살, 남들 학교 다닐 때 시작한 금속공예
어느새 50년 경력의 금속공예 명장으로
배우려는 젊은이 없어 막내 제자가 55세
공방도, 전수공 주전자도 명맥 이었으면…
홍재만 금속공예 명장이 은주전자에 토치로 열을 가하고 있다.

탕!탕!탕! 통!통!통! 경기도 부천 우노공방에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홍재만 금속공예 명장이 동그란 쇠 덩어리에 동그란 은판을 얹어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다. “가난 때문에 13살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금속공예 공방에서 먹고 자며 일을 시작했다. 일이 힘들어 집으로 도망친 적도 있지만 열심히 기술을 익혔다.” “대장간의 커다란 쇠망치는 아니지만 작은 망치로 하루에 수만 번씩 두드려 은주전자를 만들어 왔다.” “가장 오래된 망치는 30년이 넘었는데 나의 손과 다름없다.” 그렇게 심부름하던 꼬마는 50년 경력의 금속공예 명장이 되었다.

우노공방에 완성된 은주전자와 식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은주전자가 부의 상징처럼 여겨져 중국 부자들에게 인기다. 은주전자 중에서도 ‘메이드인 코리아’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한때는 중국이 세계 최고 기술의 은주전자 제조국이었지만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기술 계승이 끊겨 지금은 한국 제품이 최상품이 됐다. “큰 사과만한 은주전자의 경우 중국 현지에서 5000만~6000만원에 팔린다. 작품을 만들어 중국 수입상에게 보내면 한국산 은주전자가 억대 가격에도 거래되고 있다. 우리 공방의 은주전자 80% 이상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수출길도 막혀 작년 한 해는 너무 힘들었다.”

은으로 주전자 형태를 만드는 것은 일정 기간 노력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어 붙이지 않고 하나의 판을 두드려 주둥이까지 만드는 주전자를 전수공 주전자라 하는데, 배우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만으로 따라 하기 어렵다. 은주전자 옆면에 다양한 무늬를 도안한 뒤 양각과 음각으로 문양을 집어넣는 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고난도 기술이다.

홍재만 명장이 은주전자의 입구를 만들고 있다.
지성구씨가 정을 망치로 때려가며 은주전자에 조각을 하고 있다.

홍 명장과 30년 가까이 일한 지성구씨는 우노공방에서 문양을 담당한다. “은주전자의 형태를 만들고 나면 문양을 그린 뒤 정을 망치로 때려 표면에 홈을 내면서 조각을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 다루는 솜씨죠. 정 날을 어떤 모양으로 갈아서 어떤 각도로 잡고 홈을 파느냐에 따라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해요.”

은은 독에 닿으면 검게 변하는데 이 때문에 조선시대 궁궐이나 권문세가에서 음식에 독이 있는지를 검사할 때 주로 이용했다. 은으로 만든 식기에 음식을 담으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렇게 우리 생활 한편에서 귀하게 여겨온 은식기이지만 지금은 문을 닫는 공방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힘든 금속공예기술을 배우려고 하지를 않아 최근 공방들이 너무 어렵다고들 해요. 코로나19보다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해요. 공방을 운영하며 버티는 게 미션이 될 만큼, 저희 공방에서도 가장 젊은 제자가 55살이에요. 지금 상태로 한 10년 정도 지나면 우리 공방도 문을 닫아야 할 거예요.”

우노공방에 은주전자를 만들 때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망치들이 걸려 있다.

하나의 은판이 수만 번의 망치질을 거쳐 화려한 외형의 은주전자로 만들어지기까지 홍 명장과 직원들은 장인정신으로 망치질을 한다. 힘에 부치지만 오늘도 최고의 은주전자를 만들기 위해 두드린다. 탕!탕!탕! 통!통!통!

 

글·사진=이재문 기자 m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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