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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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장동 의혹’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수사의지 안 보여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동 개발 사업을 둘러싼 특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번엔 사업 시행사인 화천대유자산관리의 고문으로 일했던 권순일 전 대법관이 회사에서 한 역할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졌다. 권 전 대법관은 “전화자문 정도만 했고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며 “화천대유가 어디 투자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대장동 사업 관련 자문한 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화천대유 이성문 대표는 “권 전 대법관이 일 열심히 한 건 우리 직원들도 잘 안다. 자문료 월 1500만원에 상응하는 일을 했다”고 밝혔다. 둘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어제 권 전 대법관의 위법 의혹을 제기했다. 권 전 대법관이 전화자문만으로 월 1500만원을 받았다면 판사 시절 자신의 판결과 관련된 사후수뢰죄에 해당할 수 있으며,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고 돈을 받았다면 변호사법을 어긴 것이라는 주장이다. 공직자윤리법은 대법관이 퇴직 후 3년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권 전 대법관이 지난해 9월 은퇴한 만큼 ‘고문료’를 받았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누구보다 앞장서 법을 지켜야 할 대법관 출신이 법을 어겼다면 지탄받아 마땅하고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처신도 부적절하다. 그는 2016년 화천대유의 상임고문을 맡았다가 특검에 임명된 뒤 그만뒀고, 박 전 특검의 자녀도 이 업체에서 근무했다. 특정금전신탁 형식으로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여해 거액의 배당금을 받아간 천화동인 1∼7호 가운데 2명은 박 특검이 과거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다.

이번 의혹은 여당 유력 대선주자와 관련된 만큼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다. 숱한 의혹들을 규명하려면 화천대유와 관련된 유명 법조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명백하게 밝혀내는 게 급선무다. 그런데도 서울 용산경찰서의 수사는 소걸음으로 일관하고 있다. 추석 연휴가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다. 경찰이 수사하는 시늉만 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친정부 성향 간부들로 채워진 검찰 수사에 기대를 걸기도 어렵다. 이러니 국정조사나 특검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