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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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수처 툭하면 절차 위반, ‘최고 사정기관’ 부끄럽지 않나

사진=뉴시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헛발질 수사가 점입가경이다. 공수처는 지난 5월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출금 사건 수사를 무마한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이 언론에 보도된 것과 관련, 당시 수원지검 수사팀이 주고받은 메신저 내용을 보겠다며 지난 26일 대검 서버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사전고지를 하지 않았다. 피압수자 중 한 명인 A검사가 “절차 위반”이라고 항의하자 “(압수수색을) 진행 안한 것으로 하겠다”며 빈손으로 철수했다고 한다. 또 이 고검장 기소 2개월 전에 수사팀을 떠난 검사 2명에게도 압수수색을 통보했다고 한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안이다.

공수처의 공소장 유출 수사는 친여 성향 시민단체의 고발로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이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대검 감찰부 조사를 통해 수사팀에서 유출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난 사안이다. 수사팀을 콕 집어서 압수수색하려던 공수처의 수사 방향이 애초 무리수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사팀과 공수처는 이 고검장 기소권을 놓고 크게 다투기도 했다. 검찰이 공수처의 이 고검장 ‘황제 조사’와 관련, 공수처 대변인 등을 허위 공문서 혐의로 수사하자 공수처가 ‘보복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뿐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김찬년 판사는 지난 26일 공수처가 지난 9월 10일과 13일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위법한 압수수색”이라며 김 의원이 낸 준항고 신청을 인용했다. 영장 관련 준항고 인용 결정은 이례적인 경우여서 공수처가 수사의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해당 압수수색 집행은 무효 처리가 돼 확보한 증거물은 향후 재판에서 쓰지 못하게 됐다. ‘최고 사정기관’을 지향하는 공수처가 존재 이유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 아닌가.

공수처는 ‘무소불위’ 검찰의 권한 남용에 대한 개선책으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문재인정부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그러나 성과는커녕 정치중립 위반 논란과 첫 구속영장 기각 등 무능을 드러내 출범 300일이 넘도록 존재 이유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내년 공수처 예산이 181억원이라고 한다. 세금이 아깝다는 말이 벌써 나온다. 공수처는 긴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불신을 자초한다면 설 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