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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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비가"… 수해 복구 현장 이재민들 냉가슴

"싱크대까지 모조리 다 버려"…복구 작업자들은 위험 노출

"왜 하필 오늘 비가 와서…."

건물 처마 밑에서 팔짱을 낀 채 굳은 얼굴로 수해 복구 현장을 지켜보던 박모(67) 씨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13일 복구 작업이 한창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수해 현장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불과 며칠 전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다.

반지하 집으로 온 지 석달 만에 수해를 당했다는 박씨는 "이 동네에 살아남은 반지하가 한 곳도 없다"며 "이제야 집에서 물을 다 퍼내고 쓰레기들을 꺼냈는데 주말에 또 비가 많이 온다니 속이 탄다"고 말했다.

우산을 쓰고 토사와 잡동사니가 쌓인 골목을 빠져나오고 있던 문모(62) 씨는 "이제야 겨우 건진 가전제품을 말려서 수리라도 맡길 수 있는지 알아보려 했는데 큰일"이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반지하 집 옆의 주차장에서 물이 들이쳐 집이 침수됐다는 문씨는 "집 안에 남은 게 없어서 며칠 동안 컵라면밖에 못 먹었다"며 "지금 끼니를 해결하려고 잠시 햇반을 사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반지하 방들이 전부 침수된 건물의 임대인인 김미순(64) 씨는 목에 수건을 걸치고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집 앞에 쌓인 쓰레기더미를 망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씨는 "또 비가 오니까 더 힘들어질 것 같다"며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장난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길가에 따로 빼둔 세탁기 4대 위로 비가 내리자 은색 돗자리로 세탁기를 가렸다.

근처에 머리를 자르러 간 2시간여 동안 집이 침수된 윤모(51) 씨는 목장갑을 끼고 집에서 싱크대를 들고 나온 뒤 빗줄기를 멍하게 바라봤다. 윤씨는 "하수가가 역류해 싱크대까지 뜯어내고 모조리 다 버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복구 작업을 하는 이들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군인들은 비에 흠뻑 젖은 채 집 안에서 밖으로 쓰레기를 옮기고, 자원봉사자들은 장화를 신고 양동이로 집에서 물을 퍼냈다.

관악구청 직원들은 얼굴에서 땀인지 비인지 모를 물기를 닦아내며 트럭에 쓰레기를 실었다. 직원들이 쓰레기더미를 헤집자 운동화, 장롱 문짝, 싱크대 거름망, 초코파이 박스, 시계 등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나왔다.

이날 오전 4시부터 복구 작업을 시작한 청소환경과 공무관 박한철(53) 씨는 "비가 오기 시작하니 작업을 하다 넘어지는 직원들도 생기고, 트럭에 싣던 가구가 손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생기는 등 작업 환경이 위험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비가 더 내리면 작업이 멈출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구청 직원인 정모(48) 씨는 "3일 연속 수해 피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직 절반도 못 치웠다"며 "주말 사이 비가 많이 오면 수해 피해가 반복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신림동에는 이날 오후 2시 20분 기준으로 시간당 1.0㎜의 비가 내리고 있다. 기상청은 이날부터 14일까지 수도권에 최대 150㎜ 이상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