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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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마취 뒤 성관계’ 의사, 성범죄는 무죄

1심 법원 “합의 따른 성관계 정황”
의료법 위반·폭행만 인정 징역2년

환자들에게 전신 마취 유도제를 불법으로 투여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의료법 위반 혐의 등은 유죄로 인정했으나, 성범죄 혐의에 대해선 피고인과 피해자들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2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안동범)는 의료법 위반과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2)씨에게 징역 2년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18년을 구형한 바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서울서부지방법원 제공

재판부는 의료법 위반과 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했다. 양형 사유에 대해 재판부는 “의사인 피고인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병원을 운영하면서 환자들에게 에토미데이트(전신 마취 유도제)를 불법 투약하고 허위로 기재하는 등 그 책임이 매우 무겁다”며 “범행 방법이나 횟수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다만 강간과 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진술 내용을 보면 범행 일시와 경위에 대해 일관되지 못하고, 성관계가 없었다는 통화 내용도 있다”며 “범행 전후로 피고인과 성적 농담을 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도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과 피고인이 서로 간의 합의에 의해 성관계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A씨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 찾아온 여성 환자 4명에게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뒤 총 12회에 걸쳐 성추행·강간·폭행한 혐의로 지난 4월 재판에 넘겨졌다.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용법·효능이 유사해 ‘제2의 프로포폴’이라고 불리지만, 마약류 지정이 되지 않은 수면 마취 유도제다. 피해자 4명 중 1명은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A씨는 시술 목적으로 에토미데이트를 사용한 것처럼 진료기록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도 받았다. A씨는 2019년에도 에토미데이트를 원래 용도가 아닌 수면제 목적으로 환자들에게 상습 투여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검찰은 선고 직후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