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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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 도움 돼 행복… 너무 멋지게 발전했다"

6·25 이후 한국에 온 독일인 베스트팔 간호사
부산에서 적십자병원 운영하며 한국인 치료
2022년 별세… 당시 활동상 담긴 사진 전시회

“저는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갔을 뿐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독일(당시 서독) 의료진의 일원으로 한국에 파견돼 2년 가까이 활동한 잉게보르크 베스트팔(2022년 3월 작고) 간호사가 생전에 남긴 회고다. 고인이 한국 측에 기증한 귀중한 사진 자료 100여점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시민들과 만난다.

6·25전쟁 이후 독일 의료진 일원으로 한국에서 환자들을 돌본 잉게보르크 베스트팔 간호사의 생전 모습. 2022년 3월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연합뉴스

독일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의료진을 보냈기에 그동안 ‘6·25전쟁 참전국’에 포함되지 않다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의료지원국으로 공식 인정을 받으며 참전 22개국의 일원으로 자리매김 했다.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는 15일 전쟁기념관 3층 유엔실에서 독일 의료지원 전시 개막식을 진행했다. 이는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전쟁기념사업회와 주한 독일대사관이 공동으로 개최한다.

 

전쟁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독일은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5월부터 1959년 3월까지 약 5년간 부산에서 독일적십자병원을 운영했다. 이 기간 한국에 머문 총 110여명의 독일 의료진은 입원 환자 2만여명과 외래환자 28만여명을 치료했다. 또 한국인 간호사를 비롯한 수십명의 의료인을 양성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의료지원 활동을 담은 사진, 파견 의료진의 회고록, 적십자병원 파노라마 사진 및 도면 등 귀중한 자료를 직접 접할 수 있다. 특히 1954년부터 약 2년간 적십자병원에 파견됐던 베스트팔 간호사가 기증한 100여점의 사진은 전쟁기념관의 전시를 통해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고인은 95세이던 2021년 베를린 현지에서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전쟁 직후 한국에 처음 갔을 때는 심각하고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한국에 갈 결심을 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고,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디서 일을 하느냐는 아무래도 좋았다”라며 “필요한 곳에 갔고 실제로 많이 도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고 답했다.

6·25전쟁 이후 부산에 들어선 독일적십자병원에서 의료진이 영아들을 돌보는 모습. 당시 병원에서 일한 잉게보르크 베스트팔 간호사가 기증한 사진이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고인은 2000년대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그는 “한국이 너무 멋지게 발전해 내 기억 속에 있던 한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이제 더는 비참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주(駐)독일 한국대사관은 2021년 베스트팔 간호사를 대사관으로 초청해 한국 정부를 대표해서 고마움을 표했다. 또 6·25전쟁 참전용사를 위한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했다. 이듬해인 2022년 3월 고인이 별세하자 대사관은 “6·25전쟁 중 맺은 대한민국과 독일 간의 우정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6·25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왼쪽)이 부산에 들어선 독일적십자병원을 둘러보기 위해 의료진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당시 병원에서 일한 잉게보르크 베스트팔 간호사가 기증한 사진이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귀중한 자료 중에는 독일적십자병원 1기 한국인 간호사 김신의 여사가 기증한 간호사 자격증(졸업증)과 당시 사진 등도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앞서 독일은 적십자병원 활동이 정전협정 체결 후에 이뤄졌다는 이유로 ‘6·25전쟁 전후 복구 지원국’으로 분류됐다”며 “그러나 지원 의사를 전쟁 기간 중에 전달한 점, 전후 구호사업이 아니라 유엔군 지원이 목적이었다는 점 등이 확인돼 2018년 6월 ‘6·25전쟁 의료지원국’으로 인정됐다”고 소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