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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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의동물권이야기]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판결

4년여를 함께 살아온 반려견이 있다. 어느 날 이웃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고 반려견이 짖자, 이웃은 주먹으로 개를 수차례 구타했고 바닥에 내리치며 발로 밟아 죽였다. 그 과정에서 반려견을 데리고 가려는 보호자를 밀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이웃은 끝까지 사과하거나 반성하지도 않았다. 재판에서 이웃에게 내려진 형벌은 고작 벌금 600만원이었다. 지난 8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내려진 판결이다.(반려견 ‘두유’ 사건)

피해 동물이 입었을 끔찍한 고통과 피해자에게 남을 심각한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 누구도 위 판결에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법정형이 낮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동물보호법은 이미 2011년부터 동물을 학대한 자에게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20년 개정된 법부터는 동물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더욱 무겁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하도록 한다. 동물의 건강을 침해한 것과 생명을 침해한 것이 마땅히 다르게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한 남성이 자신에게 짖는다는 이유로 타인의 반려견 ‘토순이’를 살해했다. 위 사건에서 피고인은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유사한 사건에서 판결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직 동물학대 범죄에서 재판부가 참고할 ‘양형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재판부가 ‘동물의 생명’을 가해자 ‘인간’의 이익보다 앞서 보호할 가치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 없이 동물학대는 무거운 범죄 행위다. 동물학대의 폭력성과 잔혹성, 그것이 인간 사회에 미칠 악영향까지 논의하지 않더라도, 고의로 다른 존재의 하나뿐인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가볍게 다뤄선 안 된다. 그러한 행위를 한 자에게 벌금 수준의 가벼운 벌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학대를 용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법원도 인식하고, 학대 사건을 엄중히 처벌해야 할 것이며, 조속히 양형 기준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주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