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승은 이제 그만! 청승은 이제 그만! 우리도 흥청망청 널뛰듯 대야에 돈 한번 담가놓고 바가지에 풍덩풍덩 물 가득가득 푸듯 써보자.”
전래동화 ‘도깨비 감투’를 소재로 만든 창극용 작품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의 한 대목이다.
이 작품은 쓰면 투명인간이 되는 도깨비 감투를 손에 넣고 부자가 될 기대에 부푼 남자가 불이 붙어 구멍 난 감투를 꿰매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여자(아줌마)는 그 누구에게도 감투를 뺏기지 않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쫄쫄이 댄스복으로 만들어 입고 한바탕 일을 벌인다. 작창을 맡은 신한별(24)은 “말맛과 생동감이 가득한 작품을 소리로 제대로 구현해보고 싶었다”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시원한 소리로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작창가를 발굴하는 국립창극단의 두 번째 ‘작창가 프로젝트’가 다음달 8∼9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10개월간의 결실을 펼쳐 놓는다. ‘작창(作唱)’은 판소리와 민요 등 한국 전통음악의 다양한 장단과 음계를 활용해 극의 흐름에 맞춰 소리를 짜는 작업이다. 창극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고 작품 전반의 정서를 이끄는 핵심 요소다.
막내 신한별을 비롯해 지난 2월 선발된 이연주(45)·이봉근(40)·강나현(29) 4명의 신진 작창가 작품을 30분 분량으로 시연하며, 국립창극단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각각 윤미현·이철희·김도영·진주 작가와 한 팀을 이뤄 동서양의 동화와 설화 등을 새로 각색한 이야기에 우리 소리를 입혔다. 지난해에 이어 안숙선·한승석·이자람(작창)과 고선웅·배삼식(극본)이 지도했다.
국립창극단 중견 단원인 이연주는 전통 판소리 기법과 시김새(소리 맛을 더해주는 꾸밈음)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작품 ‘금도끼 은도끼’를 준비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창극 배우로서 판소리의 많은 음계를 더 끄집어내고 배워보고자 작창에 도전하게 됐다”며 “(작품은) 모두 출발점이 같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사회적인 운에 따라 점지어진 삶에 비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소개했다.
신진 작창가들은 작업 도중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리스 신화 ‘메두사’를 비튼 ‘두메’를 작창한 소리꾼 이봉근은 “혼자 하는 작품을 주로 하다 보니 (여러) 배우가 나오는 (창극) 작품을 작창하는 게 어려웠다”며 “판소리 안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는데 배우들의 어떤 소리를 부각할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판소리 노래패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에서 활동한 강나현은 안데르센의 동명 동화 ‘눈의 여왕’을 재구성했다. “옛날 이야기꾼이 소리를 재밌게 들려주듯 자연스럽게 극 속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작창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번에 판소리 합창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음악적으로 소통하는 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국립극장 전속예술단체인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는 작곡처럼 전문 분야이지만 정규 교육 과정이 전혀 없는 현실에서 창극의 창작 환경을 만들고 작창가를 양성하고자 지난해 시작됐다.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작창가도 손에 꼽힐 정도이고, 창극단 작품의 대부분 작창을 안숙선 명창이 도맡기도 했다.
2년째 지도를 담당한 한승석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는 “창극의 위세가 요즘 대단한데,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장르가 되려면 작창이 해결돼야 한다”며 “이 프로젝트로 신진들의 경험과 활동이 쌓이면 훌륭한 작창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판소리의 전통 어법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감성으로 시대와 소통하는 것도 필요하다. 젊은 친구들에게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다”고 덧붙였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창극에서 작창은 ‘백년지대계’라고 할 만큼 중요한데, 그동안 쉽게 생각해온 것 같다. 그냥 만들면 되는 게 아니다”라며 “시연회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단계별로 지속적인 (작창가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작창가 프로젝트 1기 시연회에서 관객 만족도가 높았던 ‘옹처’와 ‘덴동어미 화전가’는 각각 70분 분량의 작품으로 확장해 내년 12월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