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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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부터 전자책까지… 5000년 책의 역사 한눈에

옥스퍼드 책의 역사/ 제임스 레이븐 외 15인/ 홍정인 옮김/ 교유서가/ 3만8000원

 

‘인쇄물을 통한 의사소통의 사회문화사.’ 프랑스 문화사 전문가인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은 1982년 책의 역사를 이같이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정의는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데이비드 미첼과 필립 풀먼 같은 작가들은 X(옛 트위터)에 소설을 쓰고, 전자책이 일반화됐으며, 책을 대체할 만한 수많은 문서가 웹사이트에 즐비하다. 책이 더는 파피루스나 종이를 접어 만든 물건이라는 물질적 형식에 국한하지 않는 양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레이븐 외 15인/ 홍정인 옮김/ 교유서가/ 3만8000원

영국 에섹스대 근대사 명예교수인 제임스 레이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중동 고대사 교수인 엘리너 롭슨을 비롯한 16명의 책 전문가들이 5000년에 걸쳐 이어져 온 책의 역사를 최근 급변하는 기술환경 변화를 반영해 새롭게 정리했다. 이번 책이 ‘책의 역사’에 주제를 맞췄다는 점에서, 지난 7월 ‘책의 미래’에 초점을 맞춰 출간된 책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교유서가)와 상보적 관계에 있다는 평가다.

저자들에 따르면 책의 역사는 집필되고, 인쇄된 책 자체의 역사다. 또한 유통과 전파의 다양한 방법에 대한 역사다. 아울러 읽기와 수용 방식에 관한 역사이기도 하다. 요컨대 책의 역사는 한 유형이 아니라 여러 유형이 존재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점토판부터 두루마리, 손으로 쓴 코덱스부터 인쇄본, 팸플릿, 잡지, 신문, 그리고 양피지 서적에서 디지털 텍스트에 이르기까지.

책의 역사는 단순히 물질적 형식에 관한 질문이 아니며, 읽기와 수용의 역사만도 아니다. 더 큰 질문은 텍스트의 생산과 배포, 그리고 수용이 가져오는 효과, 그러니까 책들이 스스로 역사를 만든 방식에 관한 것이다.

“필연적으로, 책의 역사는 우리의 급변하는 미디어 세계에 접속한다. 디지털 인문학의 변혁적인 연구 잠재력과 결합한 새로운 기술들은 책이 현재에는 무엇이고 과거에는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우리의 가정에 여러 방식으로 도전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책의 역사를 조명하는 14편의 글이 실렸다. 파피루스와 양피지를 썼던 고대 세계부터 디지털 시대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에 담긴 책들의 역사를 총망라했다.

르네상스, 종교 개혁,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산업화 등 서구와 관련한 사건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도 비중 있게 소개한다. 이슬람 세계 속 아랍 문자의 원리와 쿠란 필사본, 19세기 중후반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인쇄업이 발달한 양상도 전한다.

특히 오하이오주립대 사학과의 크리스토퍼 A. 리드 교수와 M. 윌리엄 스틸 도쿄국제기독교대학 명예교수는 근대 중국·일본·한국의 출판산업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들은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 출판산업이 1990년대 이래 인터넷과 전자책의 도전에 격동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한 뒤, 한국인들은 책도 신문도 읽지 않는 대신 영화관으로 몰려가고 있다고 아프게 분석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