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인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영풍그룹 장씨와 기존 경영권을 가진 최씨가 사활을 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1949년 설립 후 75년간 ‘한지붕 두 가족’으로 동업 관계를 유지해온 영풍과 고려아연의 관계는 조금씩 삐걱거리다 외부세력까지 얽힌 대규모 전면전으로 번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8일 업계에 따르면 시작은 2017년 지배구조 개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려아연 →서린상사 →㈜영풍 →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있었고, 해소를 위해 장형진 영풍 고문이 2019년 서린상사가 보유한 영풍 지분 10%를 직접 취득했다. 영향력은 영풍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에 최윤범 회장이 2019년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독립경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화, LG화학, 현대차그룹 등을 우호 세력으로 만들면서 영풍 측과의 지분차를 줄였다.
이러는 사이 발생한 여러 ‘사건’들은 양측의 감정의 골을 깊게 팼고, 결국 갈등이 폭발했다.
고려아연 측은 폐기물 처리 문제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봤다.
고려아연에서 약 40년간 근무한 이제중 부회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낙동강 상류에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카드뮴 등 배출 사건이 문제가 되자 영풍이 고려아연에 해결을 요구했고, 이를 고려아연이 거부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영풍제련소가 그동안에 50년 동안 제련 조업을 하면서 발생한 폐기물 처리도 요구했다고 전했다.
최 회장 취임 이후 환경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폐기물 처리를 떠맡는 것은 상당한 경영 부담이자 배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장형진 영풍 고문은 이 문제 해결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통해 하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남의 공장 폐기물을 받아서 처리하는 것은 배임이고 범죄행위여서 할 수 없었다”며 “이걸 막은 게 바로 최 회장이었다”고 밝혔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서린상사를 빼앗고, 황산취급대행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점을 지적했다.
최 회장은 올해 6월 서린상사 경영권을 확보하고 장세환 대표를 물러나게 했다. 서린상사는 2014년부터 영풍 측에서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해온 회사였다.
영풍과 고려아연이 서린상사 인적분할을 협의하던 중 고려아연이 이사회를 장악해 서린상사 경영권을 장악했다는 게 영풍 측 주장이다. 영풍 측은 또 고려아연이 서린상사 장악 후 기존 영풍과 고려아연이 함께 거래해 오던 고객사에 온갖 협박과 회유로 영풍과의 거래를 끊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올해 고려아연이 일방적으로 황산취급대행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도 계기가 됐다. 황산취급대행계약은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만들어진 황산을 항만부두 내 황산저장시설이 있는 온산항으로 수송할 때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일부 황산 탱크와 파이프라인을 유상으로 이용하는 계약이다. 황산은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생산되는 부산물로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아연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 강성두 영풍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영풍 측은 석포제련소의 목줄을 쥐고 흔들어 영풍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풍은 사모펀드 운영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추가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공개매수가는 기존 주당 66만원에서 주당 75만원으로 인상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최 회장 측은 영풍·MBK에 맞서 대항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확보를 추진 중이다. 고려아연 공개매수 종료일은 6일로, 장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4일 오후 3시30분까지가 ‘운명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