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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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 대리기사도 단체교섭 가능…대법 “노조법상 근로자 해당”

대리운전 기사도 단체교섭권이 있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대리운전 업체 A사가 기사 B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지난달 27일 확정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법원이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대리운전 기사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같은 대리운전 기사라도 구체적인 근로 형태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부산 지역에서 대리업을 하는 A사는 기사들과 동업 계약을 체결하고 다른 업체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고객의 요청(콜)을 기사들에게 배정했다. B씨는 2017년 10월 동업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부산 대리운전산업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이후 노조는 A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불응했다. 회사는 “대리운전 기사들은 사업자일 뿐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B씨 등을 상대로 이번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대리기사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노동조합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정의한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노동 관련 법령의 또다른 큰 축인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두 정의가 유사하지만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을 때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비교적 폭 넓게 인정된다.

 

1·2심 법원도 B씨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며 A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의 판단이 맞는다고 보고 A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대리기사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 주로 의존한 점, 사업자가 보수 등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점, 둘 사이에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피고(B씨)가 이 사건 협력업체들로부터 배정받은 콜을 수행하여 받은 수입도 원고(A사)로부터 받은 수입과 동일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피고는 소득을 원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대리기사가 배정받을 콜을 쉽게 거부하기 어려워 B씨의 보수 역시 원고가 사실상 결정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동업계약서에 따라 기사들이 업체에 내야 하는 수수료, 업무 수행 시 준수할 사항이나 받아야 할 교육 등을 A사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계약 해지까지 가능했다는 점에서 지휘·감독 관계도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