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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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반격… 5조 쩐의 전쟁 ‘승자 저주’ 우려

법원, 영풍측 가처분 신청 기각

이사회서 주당 83만원 매수 의결
2.7조 들여 15.5% 취득 후 소각
영풍정밀 대항 공개매수도 나서
영풍선 2.2조 투입 지분 공개 매수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배임” 주장
영풍, 판결 불복 추가 가처분 신청

양측, 외부자금 의존 ‘후폭풍’ 전망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자사주 매입을 선언하며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선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에 반격의 칼을 빼 들었다. MBK 공개매수가(75만원)보다 높은 83만원으로 자사주를 사들이고,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의 자금으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구상이다. 재계에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5조원 규모를 넘어선 ‘머니 게임’으로 확전되면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사업 동력이 크게 약화하는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남정탁 기자

최 회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 등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경영권 수성 방안을 발표했다. 분쟁 이후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입장 표명에 나선 최 회장은 “영풍·MBK는 적합하지 않은 경영진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공시에 따르면 고려아연 이사회는 1주당 83만원에 자사주를 공개매수하기로 결정했다. 2조6600억원을 쏟아부어 지분 15.5%를 매입하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전량 소각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베인캐피털과의 연합도 공식화했다. 베인캐피털은 이번 공개매수에 4300억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 2.5%를 취득한다. 최 회장은 “베인캐피털은 고려아연의 경영이나 이사회에 관여하지 않는 순수 재무적 투자자”라며 경영권 잠식 논란을 반박했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은 최 회장 측이 33.99%, 영풍 장형진 고문 측이 33.13%로 비슷한 수준이다.

 

고려아연이 대항매수에 나서면서 분쟁을 둘러싼 자금 규모는 5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영풍·MBK 연합은 2조2200여억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 7∼14.6%를 공개매수하고, 고려아연과 베인캐피털은 지분 18% 취득을 위해 약 3조1000억원을 투입한다.

 

고려아연 지분 1.85%를 가진 영풍정밀은 이번 분쟁의 판도를 가를 ‘핵’으로 떠올랐다. 영풍·MBK 연합으로선 영풍정밀을 확보하면 현재 대주주인 최 회장 측으로부터 고려아연 지분 1.85%를 가져오므로 사실상 이의 2배인 3.7%의 의결권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서다. 이에 고려아연은 이날부터 약 1186억원을 투입해 영풍정밀 주식 대항매수에 나섰다.

 

최 회장 측의 이 같은 반격 플랜이 가능해진 건 이날 법원이 자사주 매입과 관련해 고려아연 측 손을 들어줘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이날 영풍 측이 최 회장 측을 상대로 제기한 자가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영풍은 판결 직후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 결의가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며 서울중앙지법에 다시금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또 같은 이유로 자사주 공개매수에 찬성 결의한 고려아연 이사 6명을 형사 고소했다.

 

강성두 영풍 사장이 지난 9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뉴스1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자사주 취득에 사용할 수 있는 이월이익 잉여금 잔액이 현시점에선 약 586억원에 불과하다며 “(경영권 방어는) 시도도 못 한 채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고려아연은 이에 “당사의 자사주 취득 한도는 6조원”이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영풍·MBK에 대해 민·형사상 모든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재계에선 어느 쪽이 경영권을 인수하든 상당한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예상한다. 고려아연이나 영풍 모두 외부 자금에 의존해 경영권을 수성·확보하는 거라 만기 시 이 돈을 돌려줄 정도로 주가를 부양하거나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막대한 차입금이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 여력을 없애 회사 성장 잠재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동수·박유빈·안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