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기 위해 고물장사를 했던 청년이 있었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항공화물업을 시작한 그는 건설, 에너지, 레저 등 여러 분야 14개 계열사를 둔 그룹사를 일궈냈다.
시련은 또 찾아왔다. 아들이 학교폭력으로 사망하게 된 것. 그는 ‘용서’를 택했다. 장학회를 만들어 아들의 모교와 학생들을 후원했다.
2010년 도산 위기에 놓인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인수해서 키우고, 서울아트센터를 개관한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이 1일 밤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고교 1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신문 배달, 부두 하역, 고물장사를 했다. 1975년 동아항공화물을 세웠고, 이를 기반으로 참빛가스산업, 참빛동아산업 등 여러 계열사를 운영했다. 2006년 베트남에 진출해 골프장 개장, 호텔 준공 등 사업을 벌였다. 한국항공화물협회 회장, 한국도시가스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1987년 당시 서울예고 2학년이던 막내아들 이대웅군이 학폭으로 목숨을 잃으면서 교육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인은 1988년 이대웅음악장학회를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지난해까지 35년간 후원받은 학생은 3만여명에 이른다.
2010년에는 아들의 모교인 서울예고와 예원학교 재단인 서울예술학원이 어려움에 빠지자 이를 인수해 이사장에 오른 뒤 정상화시켰다. 지난해에는 서울예고 개교 70주년을 맞아 ‘서울아트센터’를 설립했다.
고인은 지난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들을 죽인 원수의 학교에 돈을 투자한다고 하자 다들 미쳤다고 했다”며 “그러나 내 아들의 꿈이 자라던 학교라 그냥 문 닫게 놔둘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2021년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가해자를 용서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냐는 질문에 “없다”며 “서로서로 용서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이라고 했다.
고인은 베트남에서도 사회환원에 힘썼다. 매년 베트남전 유가족 자녀와 소수민족 우수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