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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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산업 맞춰 학과·교육 업그레이드… ‘대전형 인재’ 키운다 [심층기획-협약형 특성화고를 가다]

<하> 혁신·진화하는 특성화고

‘대전 최대 특성화고’ 충남기계공고
2025년 지역 핵심산업 ‘방산’ 전문 탈바꿈
디지털설비과→방산설비과 개편 등
‘산업체서 바로 쓸 수 있는’ 교육 방점
‘협약형’ 선정으로 실습 질 강화 기대

지·산·학 협력 졸업생 정주율 ‘업’
市, 방산 진출 졸업생에 정착지원금
기업은 채용협약… 100% 취업 보장
대학, 교육과정 개발·후진학 지원도
‘대전서 배우고 일하는’ 인재 양성 기대

지난달 찾은 대전 충남기계공고 실습실에선 2학년들의 목공수업이 한창이었다. 15명가량의 학생은 저마다 망치로 나뭇조각을 두드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고, 두 명의 교사가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작업 과정을 세심하게 살폈다. 학교 관계자는 “교사 중 한 명은 실제 목공 공방 운영자”라고 귀띔했다. 학교가 실습의 전문성과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 초빙한 산학겸임교사다. 학교 관계자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드론이나 목공 등의 실습시간이 많다”며 “학생들은 졸업할 때는 목공장비는 다 다룰 수 있는 수준이 돼서 졸업한다”고 설명했다.

충남기계공고는 60년 넘는 역사를 가진 특성화고로, 오랜 기간 기계·전기 부문 인재를 양성해 왔다. 학생들은 3년간 다양한 실습 등을 통해 현장형 인재로 거듭난다. 하지만 대전 지역 특성화고 10곳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도 생존에 대한 고민은 예외가 아니다. 특정 분야 인재 및 전문 직업인 양성을 목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특성화고는 최근 학령인구 감소, 빠른 산업 변화 등의 영향으로 학생 모집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충남기계공고 실습실에서 학생 실습용 드론들이 놓여 있다. 충남기계공고 제공

이에 학교는 또 한 번의 ‘변화’를 택했다. 내년부터 방위산업(방산)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고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학과는 물론 교육과정까지 개편하는 대대적인 변화다. 학교 관계자는 “살아남기 위해선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 전략산업 맞춤으로 탈바꿈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교육부의 협약형 특성화고 사업이다. 16일 교육부에 따르면 협약형 특성화고는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 지역 기업과 대학 등이 특성화고와 힘을 합쳐 지역에 필요한 지역 기반 산업 인재를 기르는 사업으로, 내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충남기계공고는 올해 5월 1차 선정된 10개교에 이름을 올렸다.

선정된 학교들은 각 지역의 주력산업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된다. 이전부터 해당 분야 인재를 주로 육성하던 학교도 있지만, 충남기계공고는 협약형 특성화고 사업을 계기로 학교의 콘셉트를 바꾼 경우다. 학교는 이를 ‘버전 2.0’이라고 설명했다.

학교가 주목한 것은 대전의 핵심전략산업 중 하나인 방위산업이다. 대전에는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 육군교육사령부 등 국방 관련 기관이 다수 있고, 230여개의 방산업체가 모여 있다. 충남기계공고에서 가르치는 기계·드론·로봇 등은 이런 방산업체 취업에 필요한 근간 기술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졸업생들이 자연스럽게 방산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학교는 교육과정 등을 좀 더 방산 맞춤형으로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교육과정 개편 등을 위해 교육부는 충남기계공고에 5년간 45억원을 투자한다. 정부가 개별 특성화고에 이렇게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전시와 대전시교육청도 30억원을 투입한다.

충남기계공고와 손을 잡은 협약체에는 대전방위산업연합회, 대전테크노파크, 한밭대 등 지역 내 공공기관과 대학들이 다수 포함됐다. 기업들은 현장실습과 산학겸임교사 파견 등을 지원하고 37곳은 채용 협약까지 완료했다. 향후 취업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100% 취업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또 한밭대·우송대·대덕대 등 대학은 교육과정 공동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졸업생이 취업했다가 대학에 가는 ‘후진학’ 등을 지원한다.

대전시는 향후 지역 방산업체에 취업한 충남기계공고 졸업생에게 지역 정주를 위한 정착지원금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대전에서 배우고, 대전에서 일하는’ 인재를 양성해 정주율을 높인다는 목표다. 강석종 교감은 “협약 주체들의 지원과 협업으로 현장실습 질이 높아지고 기존에 학교 차원에서 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교육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협약 기업으로의 취업은 물론 협약 대학으로의 진학 문도 넓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생존 위한 변화는 필수

충남기계공고는 내년부터 기존 디지털설비과는 ‘방산설비과’로, 스마트시티과는 ‘방산건설과’로, 기계설비과는 ‘방산장비설계과’로, 스마트팩토리과는 ‘AI로봇운용과’로 바꾼다. 스마트융합기계과, 철도차량과, 전기과는 이름은 바꾸지 않지만 교육과정에 방산 관련 내용이 좀 더 강화된다. 방산 관련 전공실무과목이 신설되는 등 교육과정도 전면 개편된다.

충남기계공고가 교육과정 개편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현장 적합성이다. 산업체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손주민 수석교사는 “방산건설과의 경우 측량하는 데 드론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드론 쪽을 강화해서 교육과정을 짜고 있다”며 “산업체에서 원하는 교육 위주로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가 쉬운 것은 아니다. 학교는 협약형 특성화고에 선정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강 교감은 “없던 과목을 만들다 보니 교재를 개발하고 시설을 준비하는 등 일이 많다”며 ”교사 입장에선 새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는 교육의 질을 위해 학급도 학년당 14학급에서 학년당 11학급으로 줄이기로 했다. 현재 750여명인 전교생은 향후 600명 수준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충남기계공고 실습실에서 학생들이 목공수업을 하고 있다. 충남기계공고 제공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변화를 꾀하는 것은 위기감 때문이다. 강 교감은 “산업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고 학교도 이런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 앞에 서느냐, 뒤에 따라가느냐의 차이”라며 “우리는 앞에서 선제적으로 가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충남기계공고는 과거에도 몇 차례 학과를 개편하며 꾸준히 변화에 대응해 왔다. 손 수석교사는 “전반적으로 직업계고가 위기다. 우리 학교는 비교적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가만히 있어선 안 되는 상황”이라며 “산업체에서 원하는 기술이 달라지고 학생들 관심도 변하다 보니 계속해서 혁신과 변화가 필요하다. 어렵지만 교사들도 취지에 공감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기계공고는 협약형 특성화고를 계기로 취업 연계율이 높아지면 현재 45%인 취업률이 60% 정도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역 산업인 방산 쪽 취업률이 높아져 정주율이 늘 것으로 기대된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경우에도 방산 관련 학과 진학 문이 넓어져 졸업 후 지역 방산업체에 취업하는 등 궁극적으로 지역에 남는 학생이 증가할 것이란 설명이다. 강 교감은 “내년에는 신입생 선발 시에도 방산 쪽에 관심이 많은 학생을 더 많이 뽑을 계획”이라며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공동기획: 세계일보·한국장학재단

대전=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