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제주 기초단체 설치 연내 주민투표 힘들 듯

정부 미온적 입장…투표 절차 60일 소요
도 “행안부와 협의 중…투표 늦춰지면 법률 제·개정 노력”

제주도가 역점 추진하는 기초자치단체 설치 주민투표가 정부의 미온적인 입장으로 연내 실시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20일 제주도에 따르면 2026년 7월 시작하는 민선 9기에 맞춰 새로운 기초자치단체가 출범할 수 있도록 연내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주민투표를 추진해왔다.

 

주민투표법은 주민투표일을 ‘주민투표 발의일부터 23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로 규정하고 있고, ‘투표일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속절 또는 공휴일인 때와 투표일 전일이나 그 다음날이 공휴일인 때에는 그 다음주의 수요일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 게다가 올해의 경우 마지막 수요일인 12월 25일이 성탄절이어서 주민투표가 가능한 연내 마지막 수요일은 12월 18일이다.

 

주민투표 실시를 위해서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투표 요구에 이어 도의회 의견 청취와 발의, 공고 등 절차에만 60일 가량이 소요된다. 12월 18일 주민투표를 위한 마지노선은 10월 17일로, 이미 지났다. 도의회가 동의 절차 등을 간소화하더라도 연내 주민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조만간 행안부의 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있어야 한다. 도는 연내 주민투표 실시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식·비공식적으로 건의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 15일 제주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민 의사를 물을 수 있는 이런 방안(주민투표)이 마련된다면 도민의 자기 결정권을 강화해 분권과 균형 발전 정책을 시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를 건의했다.

 

오 지사의 건의에 윤 대통령은 “도지사의 권한이 줄어드는 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동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민생토론회 직후 브리핑에서 “행정체제 개편 의제는 민생토론회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지난 8일 “기초단체 설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 의사”라면서도 “제주도와 실무진 간 협의를 통해 검토해 나가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제주도는 “주민투표가 늦춰질 경우 정부 협의를 통한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 제·개정과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통해 민선 9기에 맞춰 차질없이 출범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연내 주민투표 실시를 목표로 행안부와 지속해서 협의를 진행 중이다. 기초자치단체 설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건의와 면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 논의는 2010년부터 시작돼 오랜 기간 도민들의 관심사인 만큼 이를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닌 도민의 참정권 회복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이라며 “시장 직선제와 의회 구성을 통해 책임 행정 구현과 주민 참여 강화를 실현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때 기초단체를 없애고 1개의 단일 광역자치단체로 행정체제를 단순화했다. 시행 이후 ‘제왕적 도지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며 기초자치단체 부활 필요성이 제기됐다.

 

현재의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행정 서비스 편의를 위해 구분한 행정시일 뿐이어서 자치권이 없고 시장도 도지사가 임명한다.

 

오 지사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에 다시 기초단체를 두는 방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제주시를 국회의원 선거구(제주시갑·제주시을)에 따라 서제주시와 동제주시 2개로 분할하고, 서귀포시를 현행대로 두는 3개 기초자치단체안을 도에 권고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