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에서 부실 대응으로 해임된 경찰관이 불복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도 최종 패소, 해임이 확정됐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전직 경위 A(50)씨가 인천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이달 확정했다.
◆ “사람 살려” 딸 비명에 …경찰은 도망가고 아빠만 올라갔다
이 사건은 지난 2021년 11월15일 오후 5시5분쯤 인천 남동구 한 빌라에서 발생했다. 인천 논현경찰서 소속 모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A 전 경위와 B(26·여) 전 순경은 당시 빌라 4층에 살던 50대 남성 C씨가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A씨는 일단 아랫집과 가해 남성을 분리하기 위해 신고자인 60대 남성 D씨를 빌라 밖 주차장으로 데리고 나왔다. B 전 순경은 진술서를 작성하기 위해 D씨의 40대 부인과 20대 딸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이때 여성들만 있던 3층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A씨와 D씨는 황급히 빌라 계단으로 뛰어올라갔고 “칼, 칼, 칼”을 외치며 목을 찌르는 시늉을 하고선 현장을 벗어나는 B 전 순경과 마주쳤다. 두 경찰은 빌라 밖으로 나갔고, D씨만 아내와 딸이 있는 현장으로 갔다. D씨 딸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당시 B 전 순경을 가운데 둔 상태에서 C씨가 D씨 아내의 목 부위를 흉기로 찔렀다. D씨 딸이 범인의 손을 붙잡는 사이 B 전 순경이 “119를 불러야 한다”며 황급히 아래층으로 갔고, D씨 딸이 “사람 살려”라고 크게 비명을 질렀다.
C씨를 제압한 것도 D씨와 그의 딸이었다. 이들은 범인을 제압하느라 흉기에 찔린 가족을 제대로 지혈하지도 못했다. D씨는 “경찰관들이 밖에 있는 사이 제가 칼등으로 범인을 기절시켜 제압하자 경찰관들이 뒤늦게 와서 수갑만 채웠다”며 “경찰관들은 범인을 데리고 내려가면서 바닥에 흥건한 피도 밟지 않으려고 피하는 모습이었다”고 증언했다.
◆ 男경위·女순경 다 현장 이탈…“솟구치는 피 보고 블랙아웃, 기억 안나”
이 사건으로 A와 B씨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은 채 현장을 이탈하는 등 부실 대응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사건이 공론화됐을 당시 여경인 B씨만 현장을 이탈했다는 의혹이 일며 남녀 갈등으로까지 번졌으나, 감찰 결과 A씨 역시 빌라 내부로 진입했다 1층으로 뛰어내려오는 B씨를 보고 함께 밖으로 나와 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경찰관은 공동 현관문이 닫히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문을 열어준 뒤에야 빌라 내부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3분 이상 시간이 지체됐다. A씨는 “건물 안에서 무전이 잘 터지지 않아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B씨는 “솟구치는 피를 보고 ‘블랙아웃’ 상태가 돼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피해자 대신 흉기에 찔렸어야 했느냐”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흉기에 찔린 D씨의 아내는 뇌경색이 진행돼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회복하지 못해 실어증에 걸렸고 후유증으로 신체 절반은 사용하지 못한 채 1살 지능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관을 대신해 가해자와 맞서 싸운 D씨와 딸도 얼굴과 손 등을 크게 다쳤다. D씨는 “사건 당시 탈진해서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가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경찰관들은 바로 조치하지 않았다. 가해 남성을 체포할 때 아내를 함께 데리고 내려가 줬더라면 더 빨리 이송돼 뇌가 괴사되거나 2분간 심정지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행복했던 가족이었는데 엉망이 됐고 딸은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 경찰들 해임 소송 최종 패소…형사사건은 징역형 집유
A씨는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해임은 지나치다며 소송을 냈으나 1심과 2심에서 전부 패소했다. 2심 법원은 “A와 B씨는 권총과 테이저건 등을 갖고 있었고 수적으로도 우세해 가해자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며 “(부실 대응으로) 경찰관으로서의 품위를 크게 손상시켰다”고 질타했다.
A씨가 불복했으나 대법원 역시 2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B씨도 별도로 해임취소 소송을 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두 사람은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재판에도 넘겨졌다. 인천지법은 지난 7월 두 사람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한편 가해 남성인 C씨는 살인 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징역 22년이 확정됐다. C씨는 사건 2~3개월 전 해당 빌라 4층으로 이사를 왔으며 아래층인 3층에 사는 D씨 가족이 고의로 층간 소음을 낸다는 망상에 시달리다 갈등을 빚었다.
그는 사건 당일 낮 D씨 집에 찾아가 소란을 피우다 경찰로부터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혐의로 출석 통보를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범행했다. 그는 2차 신고 때 빌라 4층에서 D씨 아내 등이 B 전 순경에게 피해 진술을 하는 내용을 엿듣다가 집 안에 있는 흉기를 가지고 3층 복도로 내려와 범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