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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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방의회법 제정, 이제는 이룰 때다

올해 서울시 국정감사장은 그야말로 ‘정쟁터’였다. 고성과 파행이 거듭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정책을 집행하는 서울시에 대한 국감이었지만 사업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도, 미래 지향적 정책 토론도 실종됐다. 국감에서 언급된 정책은 이미 지난달 서울시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시정질문을 통해 지적하고 검증한 문제의 재탕이었다. 이내 국회의 국감이 서울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쟁으로 뭉개진 국감을 지켜보며 힘이 빠졌던 어깨가 다시 꼿꼿이 섰다. 지방자치의 핵심이자 최일선 ‘민생지킴이’인 지방의회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옛 현인은 낡은 것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규칙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1991년 부활한 지방자치의 시작도 그러했다. 지방자치의 부활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장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옥동자다. 이후 30여년간 지방자치는 획일적이었던 대한민국 정치판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지방자치는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가 가능한 일차적 공간이 ‘지역’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

본디 지방자치는 집행기관과 의회라는 두 바퀴로 움직인다. 전 세계 선진국이 모두 그렇게 한다. 그러나 우리 지방자치는 30년 넘게 집행기관이라는 거대한 외바퀴로 움직여왔다. 지방의회는 보조바퀴처럼 여겨졌다. 2022년 지방자치법 개정에 이르러서야 지방의회의 인사권이 독립됐고, 주민이 직접 조례를 제안하는 ‘주민조례발안제’가 시행됐다. 지방의회의 전문성을 높여줄 ‘정책지원 전문인력’도 도입됐다. 오랜 인내 끝에 얻어낸 결실이지만, 근원적 한계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다.

지방자치가 어느덧 장년을 바라보지만 지방의회는 여전히 홀로 서지 못하고 있다. 독자적 예산권도, 조직권도, 감사권도 없다. 지원 인력을 현실화하는 것도, 조직의 허리인 국장급 직위를 신설하는 것도 의회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국회와 중앙정부는 지방에 권한을 이양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자치의 본령은 독립이다. 하루빨리 ‘지방의회법’ 제정을 통해 실질적인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지방의회가 입법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고 주민의 의견을 조례와 예산,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 집행부를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해 예산 낭비와 독단을 막을 수 있다. 나아가 지방의회를 국회의 하위 버전 혹은 집행기관의 소속 기관으로 바라보는 두터운 편견에 실력과 능력으로 맞설 수 있게 된다.

준비는 끝났다. 지방의회를 별도로 규정하는 법률을 만들자고 전국의 모든 의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많은 전문가도 이를 지지한다. 여론의 공감대도 훨씬 넓어졌다. 그 결과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여러 건의 지방의회법이 발의돼 있다.

열두 번째 ‘지방자치의 날’(10월29일)이 밝았다. 지방자치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 위해 지방의회법 제정을 이제는 반드시 이룰 때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