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과생들한테 의대가 있다면 문과생들에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심지어 대기업 사원들조차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로스쿨 입시에 매달린다. 지난 9월 접수를 마감한 2025학년도 로스쿨 전형 경쟁률은 5.75대 1까지 치솟았다. 전국 25개 로스쿨 정원을 다 더하면 2000명인데 그 6배 가까운 1만1492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로스쿨이 개원한 2009년 1만3689명이 몰려든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전국 25개 로스쿨의 연합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로스쿨 입학의 첫 관문에 해당하는 법학적성시험(LEET) 시행을 주관하고 로스쿨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곳이다. 최근 협의회 제1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홍대식(59·사법연수원 22기) 서강대 로스쿨 원장과 28일 만나 개원 15주년을 맞은 로스쿨의 현황 등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홍 이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10년간 판사로 재직한 뒤 2006년부터 법학 교수로 강단에 서 왔다. 다음은 홍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올해 로스쿨 개원 15주년을 맞아 지난 역사를 간략히 평가한다면.
“로스쿨 도입 후 한동안은 사법시험과 병존했다. 그러다가 2017년 사시가 폐지되며 로스쿨이 국내 유일의 법조인 배출 통로가 됐다. 로스쿨이 생기기 전 대학의 법대 또는 법학과는 변호사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로스쿨을 통해 비로소 법조인 양성을 위한 소양 및 실무 교육의 통합이 이뤄졌다. 사시 시절에는 법조인 대부분이 학부 때부터 법학을 공부했다. 로스쿨 도입을 계기로 학부에서 다양한 학문을 전공한 이들이 법조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사장께선 사시 합격 후 사법연수원을 거쳐 법조인이 되었다. 또 현재는 로스쿨에 몸담고 있다. 옛 사시 및 연수원 시스템과 로스쿨 시스템을 비교한다면.
“사시 시절엔 학부 때부터 법학을 전공한 이들이 사시 합격자의 90% 이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법률가 집단이 굉장히 동질적이었다. 다양한 이슈나 관점에 대응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의 유입이 부족했다. 로스쿨의 장점은 다양한 배경의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사시 통과는 굉장히 어려웠다. 학원을 많이 다녀야 하고 수험 기간도 길다 보니 아무래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사시에 합격했다. 합격자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되는 문제도 있었다. 반면 로스쿨은 지역균형 인재 선발제도를 통해 지역 인재를 선발한다. 자연히 법조인들의 출신 지역이 다양해졌다. 또 로스쿨은 등록금 수입의 30% 이상을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돈이 없어 로스쿨에 못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각에서 로스쿨 때문에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어려워졌다고들 하는데, 그런 독학이나 외골수 스타일의 수험 준비는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 체계적인 제도 아래에서 교육을 받고 법조인이 되는 것이 현시대에 부합한다.”
물론 로스쿨에도 그늘은 있다. 로스쿨 학생들이 오직 변호사시험(변시)에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다 보니 법철학, 법사회학 등 변시와 무관한 기초 법학 과목들은 외면을 당한다. 지난 9월 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선 기초 법학의 위기를 들어 로스쿨 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로스쿨이 ‘변시 준비 학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로스쿨은 변호사 양성이 목표다. 기초 법학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기본 소양은 (로스쿨이 아닌) 학부 시절에 쌓는 것이 옳다. 로스쿨이 3년 과정인데 그 기간에 기초 법학까지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로스쿨과 학부 법학과 간의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학부에서 기초 법학을 공부한 친구들이 졸업 후 로스쿨로 진학하고, 이들이 로스쿨에서는 기초 법학과 기본 법학, 전문 법학을 연계하여 학습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바람직하다.”
―변시 합격률은 50%가 조금 넘는다. 이는 ‘소정의 과정만 거치면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로스쿨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1회 변시 때 로스쿨 입학 정원(2000명)의 75%를 합격시킨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첫 번째 응시에 불합격해 두 번째, 세 번째로 응시하는 상황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해마다 불합격자가 생겨 누적되니 응시자는 늘고 합격률은 낮아지는 게 불가피하다. 처음 제도를 설계할 때 입학 정원 말고 실제로 시험에 응시하는 인원을 고려해 합격자 비율을 정했어야 했다. 요즘 보통 한 해에 (로스쿨 입학 정원보다 1200명가량 많은) 3200명 정도가 변시에 응시하는데, 현행 제도는 그 점을 예상하고 설계하지 않았다. 입학 정원이 아닌 응시자 대비 비율을 토대로 룰(제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이 문제를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개선을) 추진하길 바란다.”
―변시에 5번 낙방하면 더는 응시할 수 없도록 한 이른바 ‘5탈(脫)’ 규정이 과거 사회적 논란이 됐었다.
“우리 협의회가 파악하기로 5탈 규정의 적용을 받은 인원이 현재까지 1543명(1~12회 변시)이다. 이런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법학을 8∼10년 공부하고도 법조인이 되지 못한다면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일뿐더러 사회적으로도 기회비용이 엄청나다. 그들이 법조 관련 직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변호사는 아니지만, 기업 법무팀 등에서 일할 수도 있지 않겠나.”
요즘 우리나라 이공계는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 소재 명문대의 공대 등에 입학한 뒤 자퇴하고 다시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이가 꾸준히 늘고 있다. 로스쿨은 학부 졸업 후 대학원 과정인 만큼 의대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하지만 제법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이들조차 미련 없이 사표 내고 로스쿨 입시에 뛰어드는 현실은 다소 당혹스럽다.
―의대와 로스쿨처럼 인재들이 너무 한 곳에만 몰리는 현상은 우려된다.
“로스쿨 이전 사시 시절에도 법학과는 인기가 높은 학과였다. 그때는 이공계 우등생들이 다 의대만 간 건 아니고 공대도 갔다. 마찬가지로 문과생도 우수한 이가 다 법대만 간 게 아니고 경제학과에 가기도 했다. 문제는 오늘날 문과생들의 진로가 너무 막혀 있다는 점이다. 졸업 후 취업이 잘 안 되니 로스쿨로 쏠린다. 로스쿨 진학 결심 이전 단계에서 이미 인재의 미스매치(수요·공급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 지금 산업 현장에선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분야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우리 대학들은 그런 인재를 길러낼 학과가 많지 않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대학 입시는 아직도 20∼30년 전의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
―로스쿨 도입 후 ‘법조 일원화’의 일환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10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도록 정했다. 그런데 최근 국회가 법을 고쳐 그 기간을 5년으로 단축했다.
“법조 일원화는 이상론이다. 문제는 그것에 맞게 법조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재판에서 판사가 모든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변호사와 배심원 등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반면 우리는 재판이 판사에게 집중돼 판사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구조다. 젊어서부터 잘 훈련된 판사가 아니면 감당이 안 된다. 그러니 10년씩이나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고 5년 정도로 절충한 것은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한국 현실이 반영된 법조 일원화인 셈이다.”
AI가 급속히 발전하며 ‘미래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존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사건 수임 후 관련 법리와 판례를 분석하고 재판부에 낼 의견서를 쓰는 변호사 고유의 업무를 AI가 대체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어떤 이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전관예우가 안 통하는 AI 판사에게 재판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AI 시대의 법률 교육은 어때야 할까.
“로스쿨 입장에선 AI 솔루션(문제 해결 시스템)을 잘 다룰 수 있는 변호사를 양성하고 싶다. 지금 전국 25개 로스쿨이 저마다 규모가 다른데 규모가 작거나 지방에 소재한 로스쿨의 경우 그런 교육을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 협의회가 학생들에게 AI 관련 교육 기회와 채널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리걸테크(법률과 디지털 기술의 연계) 기업들과도 협력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앞으로 2년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어디에 있는 로스쿨을 가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인재로 양성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로스쿨 개원 후 15년이 지나며 서울 등 수도권 로스쿨과 지방 로스쿨 간의 격차가 커졌다. 이를 해소해 전국 로스쿨들의 평균적 역량 강화를 끌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