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 101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증거조사만 내년 여름까지 예상되는 등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이는 재판 일정이 보석 허가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31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재판장 양환승)는 김 위원장의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김 위원장)에 대하여 보석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므로 형사소송법 제96조에 따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석 조건으로 △서약서 제출 △주거 제한 △보증금 3억원 △소환 시 출석 △출국 및 3일 이상 여행 시 법원에 사전 신고 △수사과정에서 진술한 피의자, 참고인 및 이 사건 증인으로 신청되거나 채택된 사람과 이 사건 변론과 관련된 사항으로 접촉하거나 법정증언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 금지 등을 제시했다.
보증금은 김 위원장의 배우자가 제출하는 보석보증보험증권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보석보증보험증권은 보석금을 한 번에 마련하기 어려울 때 보험회사에 소액의 보험료만 내고 보증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전상범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보증금 3억원은 일반인 기준으로는 고액이 맞지만, 김 위원장에게는 큰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며 “보석 조건을 어길 때의 부담감을 주기 위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전 변호사는 이번 보석 인용이 재판부가 재판 장기화를 염두에 둔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6개월 내에 사건이 끝날 것 같지 않으면 보석으로 나오기도 한다”며 “겨울 휴정기와 검찰의 상반기 인사이동 등을 고려하면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지난 16일 열린 2차 공판에서 “증거조사를 내년 상반기, 늦어도 여름 휴정기 전까지 마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당시 재판부는 “증거조사가 길어지면 각 쟁점별로 토론할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며 신속한 재판 진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판 장기화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전날 30일 열린 3차 공판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녹취록과 카카오톡 메시지 등 900여 개에 달하는 증거를 조사하는 데만 4시간이 소요됐다. 양측 모두 증거 설명에만 1시간 40분이 걸릴 정도로 분량이 방대해 재판부는 “증거가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동 소재의 한 변호사도 “1심 구속 기간이 최장 6개월인데, 증거조사만 내년 여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석 허가는 예견된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측은 앞서 보석 심문에서 “공개수사가 진행되고 1년 6개월 이상 지났고, 관련 사건 재판도 1년 가까이 진행됐는데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보석을 호소했다. 반면 검찰은 “증인들이 대부분 카카오 그룹 임직원들인데, 피고인이 석방되면 진술 회유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반대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15일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등의 사건과 병합해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검찰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 대한 증인신문도 요청한 상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하이브의 SM엔터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시세조종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2월16∼17일과 27∼28일 사이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원아시아파트너스 등을 동원해 총 24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매집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하이브의 공개매수가(12만원)보다 높게 주가를 고정하는 방식으로 총 553회에 걸쳐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