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歌王)’의 보컬은 데뷔 56년 차에도 음 하나를 허투루 흘리지 않을 정도로 쩌렁쩌렁했다. 그의 밴드 위대한탄생의 육중한 사운드에도 조용필의 에너지는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조용필은 지난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정규 20집 발매 기념 콘서트에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발휘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바운스(Bounce)’와 신보 타이틀곡 ‘그래도 돼’까지 록, 국악, 팝, 트로트 등 다채로운 장르를 오가며 시대 흐름과 발맞추며 걸어온 음악 외길을 압축한 30곡에 육박하는 노래를 흐트러짐 없는 라이브로 들려줬다.
초겨울 날씨에도 공연이 열린 KSPO돔 인근은 조용필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몰려든 팬들로 북적였다. 중장년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 팬과 부모를 따라온 젊은 관객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무대 뒤 일(一)자로 배치된 거대한 전광판과 그 중앙에 자리한 원형 구조물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한 눈동자로 변신했다. 음악과 무대를 향한 조용필의 불꽃 같은 집념을 떠올리게 했다.
빨간 재킷에 트레이드마크 같은 선글라스 차림으로 나타난 조용필은 빠른 비트와 에너지가 돋보이는 ‘아시아의 불꽃’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조용필은 이어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까지 다섯 곡을 쉬지 않고 불러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양팔을 양옆으로 펼치고 관객의 호응을 유도했고, 관객들도 함성으로 이에 화답했다.
이렇듯 조용필은 이날 팬들과의 교감에 신경썼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남겨진 자의 고독’, ‘기다리는 아픔’,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옛 히트곡들도 세트리스트에 포함한 이유다. 그는 “1979년에 동아방송 라디오에서 전화가 와서 ‘드라마의 주제가를 불러 줬으면 좋겠다, 곡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창 밖의 여자’(당시 라디오 드라마 제목)를 내가 전화로 듣고 적었다”며 “1981년도에는 주차장에서 마주친 PD가 ‘(곡을) 하나 써 줘’ 해서 만든 게 ‘촛불’이다”라며 두 히트곡의 탄성 배경도 들려줬다. 조용필이 히트곡 ‘단발머리’를 부르며 객석을 향해 “다 같이!”를 외치자 ‘오빠부대’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발매된 정규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처음으로 무대에서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전광판에서는 황혼의 주인공이 인생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조용필이 들려주는 ‘이제는 믿어 믿어봐 / 자신을 믿어 믿어봐 / 지금이야 그때’라는 메시지는 묵묵히 각자의 길을 걸어왔을 팬들에게 건네는 응원처럼 들렸다. 조용필은 마지막 정규앨범으로 공언한 20집에 대해 “스무 번째로 (정규앨범은) 아쉽게도 끝났지만,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같은 히트곡이 흘러나오며 콘서트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모나리자’의 후렴을 열창할 때는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바탕 축제를 만들었다.
조용필은 ‘추억 속의 재회’, ‘꿈’, ‘바운스(Bounce)’를 앙코르로 선보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홀로 쉼 없이 소화하는 콘서트는 어지간한 젊은 후배 가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객석 곳곳에선 “역시 가왕”이라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조용필은 아낌 없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관객을 향해 “내 나이 때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라고 장난스레 말을 건네며 미소지었다.
조용필이 공연 사운드는 물론 영상과 무대 효과까지 세심히 신경 쓰기로 정평이 난 만큼 이날 콘서트에서는 볼거리도 풍성했다. 무대 위 천장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일자형 조명은 수시로 ‘ㅅ’자 혹은 ‘ㄱ’로 모양을 바꿔가며 눈부신 천연색 조명을 뿜어냈다. 여기에 위대한탄생의 노련한 연주가 더해지면서 장내는 마치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파티 같은 흥으로 가득 찼다. 조용필은 때로는 록스타처럼 직접 기타를 메고 김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등 위대한탄생 멤버들과 합주하는 퍼포먼스도 보여줬다.
공연장 앞에 마련된 조용필의 등신대에는 그와 ‘투샷’ 사진을 찍으려는 긴 줄이 생겨났다. 조용필 팬클럽 ‘이터널리’의 남상옥 회장은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가 주는 위로가 너무 감동을 준다. 이 감동과 공감은 조용필 음악이 주는 기적”이라며 “기자회견에서 ‘이번 앨범이 마지막이지만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는 오빠의 말에서는 음악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