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은 시험 압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만끽하면서도 허탈함과 공허함을 겪는다고 한다. 이른바 ‘수능 후유증’으로 불리는 이러한 감정은 번아웃 증상이다. 입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떠밀리듯 공부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진로를 결정하는 사이에 자칫 우울, 무기력, 불안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심리지원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수능이라는 큰 산을 하나 넘은 수험생들이 본격적인 입시 준비에 돌입하기 전에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풀고 지친 마음을 돌보는 기회를 만들어보길 바란다. 회색빛 도시가 아닌 늦가을이 무르익는 농촌에서 계절을 만끽하고 자연을 경험하면 좋을 듯하다.
최근 우리 농업·농촌은 식량 생산이라는 경제적 역할 외에도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여가 공간 및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식물, 동물, 농촌 경관, 전통문화, 고유한 먹거리, 손쉬운 농업 활동과 같은 유무형의 농촌자원을 소재로 국민의 심리적, 사회적, 인지적, 신체적 건강을 도모하는 치유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치유농업과 일반 농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농업 활동을 통한 소득 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건강 회복과 증진의 수단으로 농업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텃밭 가꾸기는 소근육을 자극해 신체 건강을 증진한다. 씨앗이 새싹으로 자라 꽃 피고 열매 맺는 과정을 곁에서 살펴보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와 인내가 성취로 연결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농촌진흥청은 현재 총 46종의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국의 치유농업시설(농장, 마을, 기관 등)에 보급하고 있다. 각 시설에서는 이용자의 치유 효과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선택해 운영하며 치유농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청년 마음 건강 농촌 치유’ 프로그램은 불안과 좌절, 우울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고 마음의 근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도자기 공예, 미술 치료, 노르딕 워킹 등과 같은 활동으로 구성됐다. 가족 동반 참여도 가능해 개인의 일상 회복은 물론 가족 간 유대감도 높일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효과를 검증한 결과 프로그램 참여 전보다 각각 불안감 31.4%, 우울감 39.9%, 무력감 24.3%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치유농업 프로그램은 교육부의 ‘늘봄학교’ 정책과 연계해 확대 중이다. 식물이 자라는 환경을 알아보고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창의 과학 프로그램, 도심 학교에 식재 공간을 조성해 식물을 기르며 학교생활 적응을 돕는 원예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치유농업은 우리 일상에 쉼표가 되고, 마음 건강을 위한 녹색 처방전이다. 치유농업 정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 속도를 내고 있고, 관련 연구와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에 따라 점차 저변도 확대될 전망이다. 유아부터 노인, 몸이 불편한 환자부터 소외 계층까지 정서적 지지와 응원이 필요한 모든 이의 건강과 행복한 삶에 치유농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권철희 농촌진흥청 농촌지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