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정치학/ 데이비드 걸럼비아/ 이대희 옮김/ 에코리브르/ 1만3000원
“미국을 암호 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일성 이후 비트코인은 연일 상승, 9만달러대에서 10만달러로 도약을 노리고 있다.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극과 극’이었다. 한쪽에서는 “화폐가 아닌 투기”라고 깎아내리지만, 엘살바도르처럼 법정 화폐로까지 채택하는 곳도 있다.
비트코인과 관련한 대부분의 논의는 금융·경제학적, 혹은 기술적 관점에서 이뤄졌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소프트웨어 암호기술에 기초했다는 점이나, 향후 얼마나 상승할지, 진짜 화폐 역할을 대체할지 등이 대다수였다.
신간 ‘비트코인의 정치학’은 정치적 관점에서 비트코인을 ‘극우 정치사상에 의존하는 사이버 자유주의’로 규정한다. 암호 화폐의 기반이 되는 경제적·정치적 사상의 상당 부분이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 다양한 사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트코인이 어떻게 이런 극단주의적 생각을 체화했는지 이해하려면 ‘사이버 자유지상주의’라는 관점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협의의 의미로 “정부는 인터넷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요약되는데, 신자유주의적 우편향 풍조와 결을 같이 한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비트코인 ‘암살 시장’을 설립한 일명 ‘산주로(Sanjuro)’를 거론하며 비트코인 지지자의 모순이 존재하다고 말한다. 정치인을 살해하도록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며 “모든 정부를 모든 곳에서 파괴할 것”이라는 산주로식 무정부적 종말은 결국 무정부 자본주의, 승자독식, 신봉건주의 등 극단적 우파의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비트코인이 광범위하게 채택되면 부패한 중앙은행 통화 대체를 통해 ‘전제 정치’가 종식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말이다.
비트코인을 ‘믿는’ 많은 사람이 자신은 이런 이론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시카고학파부터 연방준비제도 음모론자들의 노골적인 극단주의까지 침투한 이념들에서 비트코인이 기반으로 삼는 정치적·경제적 사상은 많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신기술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주의적 문헌에만 국한되던 극단주의적 사고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자유연맹·존 버치 협회·민병대 운동·티 파티 같은 극우 집단, 앨릭스 존스나 데이비드 아이크 같은 음모론자, 폭스 미디어 그룹과 일부 우익 정치인처럼 정도가 덜한 우파 대변자들에 의해서만 전파되던 도그마가 이제는 이런 생각들의 기원이나 현대 정치에서 이런 생각들의 기능을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까지 회자되는 것을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