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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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속도조절’한 AI 디지털교과서… 현장 우려 불식될까

교육부가 내년 3월 전국 초·중·고에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는 가운데 국어와 기술·가정 과목은 도입 과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속도 조절’ 요구가 나오자 일부 수용한 것이다. 교육부는 우선 내년에는 AI 디지털교과서의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과목에 집중한다는 방침이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 AI 디지털교과서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AI 디지털교과서의 성패는 ‘교사’들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국어, 기술·가정 제외하고 사회·과학은 연기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로드맵 조정안’을 발표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디지털기기로 다양한 학습콘텐츠를 제공하는 교과서로, AI 기능이 들어가 학생 수준별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 교육부는 교실에서 AI 디지털교과서가 서책형 교과서를 보조하면서 함께 쓰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도입 로드맵 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당초 2025년 초등 3·4학년과 중·고 1학년 영어·수학·정보 과목을 시작으로 초 3학년 이상 모든 과목(도덕·예체능 제외)에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날 일부 과목은 제외하거나 도입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국어와 실과(기술·가정) 과목은 적용이 전면 보류됐다. 당초 계획에는 초등학교 국어와 실과, 중학교 국어, 기술·가정은 2026년, 고등학교 국어와 실과는 2028년 도입 예정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어는 자기표현이 많은 교과라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있었고, 기기를 통한 국어 수업이 문해력을 저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며 “실과(기술·가정)는 삶과 관련된 교과라 실천적 수업(실습)이 주로 이뤄지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사회·과학은 도입 시기가 미뤄졌다. 교육부는 2026년 도입 예정이었던 초등학교 사회(역사)와 과학, 중학교 과학은 2027년 도입하기로 했다. 이들 과목은 다양한 정보와 사례 등을 기반으로 한 AI 활용이 필요해 콘텐츠를 좀 더 다듬는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단 영어·수학·정보를 학교에서 안정적으로 지원하는데 방점을 두고 사회·과학은 좀 더 다듬어가면서 2027년에 안착시키겠다고 방향을 잡았다”며 “영어·수학 등 효과 있는 과목 먼저 집중해서 안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사회(한국사)와 과학은 예정대로 2028년 도입된다.

 

◆현장 요구 수용…관건은 ‘교사’

 

지난해 정부가 2025년 AI 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 계획을 발표한 뒤 교육계에선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너무 갑작스럽게 정책이 추진된다는 것이다. 일관되게 전 학년·전 과목 도입을 강조하던 정부가 한발 물러선 것은 AI 디지털교과서가 성공하기 위해선 교사·학교 등 현장의 협조가 필수 조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시도교육감협의회가 국어와 기술·가정 과목은 도입을 미루거나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AI 디지털교과서는 무엇보다도 ‘교사’가 관건으로 꼽힌다. 아무리 기능이 좋은 AI 디지털교과서가 있더라도 교사가 교실에서 활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서다. 교사가 얼마나,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한 만큼 ‘교사들의 마음’에 AI 디지털교과서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한 중학교 수학 교사는 “예전 같으면 문제 풀고 채점하고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AI 기능이 들어오면 실제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푼 아이가 몇 명인지, 찍어서 맞춘 아이는 몇 명인지 등이 눈에 보일 수 있다”며 “그런 결과들을 교사가 적극적으로 수업에 활용한다면 효과가 높아지는 것이지만 못 본 척 넘어가는 교사도 있을 수 있다. 교사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사전에 연수받은 선도교사들을 통해 AI 디지털교과서가 현장에 안착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얼마나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고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신학기까지 남은 시간은 3개월뿐이고 교사마다 디지털기기 활용 능력 등에 편차가 커 한동안은 혼란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겨울방학까지 일반 교사 15만명 연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디지털교과서 도입학년인) 초3∼4, 중1, 고1 선생님은 충분히 연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사이에선 학교에서 디지털기기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각 지역 교육청에서 학생들에게 디지털기기를 나눠준 경우가 많은데,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이 기기를 이용해 게임이나 SNS 접속 등을 한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디지털기기로 유튜브나 유해사이트 등에 접속하는 것은 최대한 막는다는 입장”이라며 “AI 디지털교과서는 보안장치가 이중, 삼중으로 작동하고 교사가 학생들 화면 모니터링도 가능하다. 관련 교육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디지털교과서로 교육격차 해소” 자신

 

이날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 관련 논란에 대한 보도참고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브리핑장에서 홍보 동영상도 트는 등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교육부는 특히 AI 디지털교과서의 맞춤형 기능으로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수업시간에 20명이 다 같은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면 학업 수준이 낮은 학생은 쉬운 문제를, 학업 수준이 높은 학생은 어려운 문제를 풀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보다 수업 집중력이 높아지고, 수업이 어려워 아예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 등도 줄어들 것이란 설명이다. 

 

이 부총리는 “AI 디지털교과서로 맞춤 교육이 실현되면 기초학력 미달 학생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필요한 역량을 키울 수 있다”며 “공정한 교육 기회가 보장되므로 AI 교과서는 교육격차 해소, 양극화 타개를 위한 핵심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과목 조정은 더는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 부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추후 현장반응 등을 고려해 도입 과목이나 학년이 또 조정될 수 있냐”는 질문에 “이번 조정안이 과목 조정안으로는 정부의 확정적 안이 될 것 같다”며 “앞으로는 보다 구체적으로 (AI 디지털교과서의) 혜택, 효과 등 전략적인 부분에 대해 상의드리고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육격차 해소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