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3일 체포영장 집행은 겹겹이 싸인 저지선을 뚫고 관저로 향하는 ‘공성전’을 방불케 했다. 공수처는 수사관과 경찰 등 150명의 체포조를 투입했지만, 최종 저지선인 대통령경호처의 육탄 방어전에 가로막혀 5시간30분 만에 철수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상 초유의 체포영장 집행이 실패로 돌아가며 공수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고,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서겠다”던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수처 수사관들은 이날 오전 6시14분 차량 5대를 나눠 타고 정부과천청사에서 대통령 관저가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대치가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생수와 방한용품까지 챙겼다고 한다. 경찰은 오전 7시10분쯤 윤 대통령 관저 인근 한남대로 일대의 차량 통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체포영장 집행에 대비해 서울기동대 45개 부대 2700여명을 관저 주변에 배치했고, 기동대 버스 135대를 현장에 대기시켜 ‘차벽’을 세웠다. 이어 공수처 수사관들이 오전 7시24분 관저 인근에 도착했다.
체포영장 집행엔 공수처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이대환 수사4부장을 비롯한 공수처 수사관 30명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 소속 120명이 투입됐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바리케이드와 대형 버스 1대가 가로막았고, 경호처 직원 50여명, 군인들이 ‘1차 저지선’을 구축했다. 체포팀은 바로 체포영장을 제시했으나, 경호처 측은 “경호법에 따라 경호할 뿐”이라고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일부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약 50분간의 대치 끝에 공수처 인력 30명과 경찰 수사관 50명은 오전 8시4분 입구를 뚫고 관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으려는 ‘2차 저지선’은 더 단단했다. 공수처와 경찰 수사관들이 1차 저지선을 뚫고 언덕 100m가량을 올라가자 버스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단의 소형 전술 차량으로 구축한 2차 방어선이 나타났다.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찰은 오전 9시36분쯤 바깥에서 대기하던 30여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체포팀은 충돌 상황에서도 2차 저지선을 뚫고 관저 정문에서 200m 지점까지 진입에 성공했다. 체포영장 집행에 성공할 것이란 긍정적인 기류가 체포팀에 흘렀다. 하지만 오전 9시50분쯤 마지막 ‘3차 저지선’을 또 맞닥뜨렸다. 대형 버스와 승용차 등 10대 이상이 진입로를 완전히 막았고, 경호처 직원과 군인 200여명이 팔짱을 끼고 ‘인간띠’를 만들었다. 1?2차 저지선에 있던 경호처 요원과 군 병력이 최후 방어선까지 올라와 체포팀 진입을 원천 차단했다. 당시 현장엔 개인 화기를 소지한 경호처 요원들도 곳곳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10시10분 체포팀은 영장을 제시하며 협조를 요구했지만, 박종준 경호처장은 “대통령경호법에 따른 경호구역”이라면서 집행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결국 검사 3명만 협의 끝에 관저 철문 앞까지 갔고,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이들을 맞았다. 변호인단은 “수사권한이 없는 공수처가 발부받은 영장은 위법하다”며 “조만간 선임계를 제출할 테니 추후 논의하자”고 말했다. 결국 공수처는 오후 1시30분쯤 “현장 인원들 안전이 우려돼 체포영장 집행을 중지했다”고 밝히며 물러섰다. 이어 “법에 의한 절차에 응하지 않은 피의자의 태도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날 체포팀의 체포영장 집행은 끝내 불발됐으나, 그나마 최종 저지선까지 진입이 가능했던 건 관저 경비를 맡는 경찰과 군이 경호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통령 관저는 3중 경호체계로 이뤄지는데, 서울경찰청 202경비단이 관저 외곽,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55경비단이 관저 울타리 경호를 담당한다. 경호처는 담장 내 최근접을 비롯해 전체 경호구역을 통솔한다. 202경비단과 55경비단은 1차 저지선인 관저 입구 철문을 공수처와 경찰의 협조 요청에 따라 개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호처 직원과 군 인력이 지킨 2차 저지선이 뚫리는 과정에서도 박 경호처장이 군과 경찰에 인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경찰과 군 지휘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경비단도 관저 외곽만 지키며 내부로는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