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남편 니코틴 살해 혐의’ 무죄…혓바닥 통증 유무가 갈랐다 [사건수첩]

‘남편 니코틴 중독 살해 혐의’ 30대 아내, 무죄 확정
“고농도 니코틴 원액 혓바닥 통증 없이 음용 어려워”
1·2심 징역 30년→대법 파기환송→무죄→재상고 기각

남편을 니코틴 원액이 든 음식물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던 30대 여성이 파기환송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고농도 니코틴 원액을 음용할 경우 혓바닥을 찌르거나 혓바닥이 타는 통증이 느껴져 이를 몰래 음용하게 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며 ‘증거 불충분’이라고 판단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주심 김상환 대법관)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지난해 12월24일 무죄를 선고한 수원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21년 5월26일부터 이틀간 남편 B씨에게 3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의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먹도록 해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B씨는 26일 A씨가 건넨 미숫가루와 흰죽을 먹고 속쓰림과 흉통 등을 호소하며 그날 밤 응급실을 다녀왔다. 이어 27일 오전 1시30분부터 2시까지 다시 A씨가 건넨 찬물과 흰죽을 먹은 뒤 같은 날 오전 3시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피고인이 액상 니코틴 구매 당시 원액을 요구한 정황 등이 살인의도와 연결된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2심 법원은 찬물을 이용한 범행만 유죄로 인정했으나 형량은 그대로 유지했다.

 

반면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의문점이 남아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어 수원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4차례 변론 끝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범행에 사용된 제품이 고농도 원액이어야 하는데 수사기관에 압수된 제품에 대해선 함량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B씨가 경제적 문제 외에 아내의 내연 관계 인지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이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며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재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은 자유심증주의와 법리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오류가 없다”고 봤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