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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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소비 위축, 경기 하방 위험”… 힘받는 추경론

계엄 정국에 내수 부진 장기화
지갑 닫은 가계 ‘연말 특수’ 실종
긴축 예산·감세정책도 악화 요인
전문가 “민생경제 위해 추경 필요”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정치권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예산이 673조여원 수준으로 위축된 데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추경 필요성은 지난달 예산 확정 시점부터 대두됐었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이 “무차별 현금 뿌리기식은 절대 안 된다”며 더불어민주당의 추경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재정당국 역시 소극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편성 추진에 혼선이 일고 있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주력했던 각종 감세정책과 지출 축소가 내수 부진을 장기화한 측면이 있다면서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추경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8일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내수 개선의 불안 요인으로 ‘건설경기’와 ‘국내 정치상황에 따른 가계·기업심리 영향’이 지목됐다. 실제 계엄사태 후유증은 소비 위축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신한카드 실적을 바탕으로 발표하는 속보치인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셋째주 전국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1년 전보다 2.8%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23년 동기 증가폭이 5.7%, 2022년 동기는 5.8%였던 점을 감안하면 연말효과는 반 토막 났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에도 꽁꽁 언 소비심리는 풀리지 않은 셈이다. 업종별로 보면 교육 서비스에서 14% 줄었고, 숙박 서비스도 8.3% 감소했다. 오락 스포츠 및 문화(-5.9%), 의류 및 신발(-6.2%) 등도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온라인 지출 결제금 역시 12월 둘째주와 셋째주 각각 2.4%, 1.1%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불응 등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면서 앞으로 소비심리 개선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경제동향 1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경제심리 위축으로 경기하방 위험이 증대되는 모습”이라며 “상품소비와 건설투자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경기개선을 제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KDI가 경기하방 위험이 커졌다고 언급한 건 2023년 1월호 이후 2년 만이다.

 

올해 673조30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든 예산은 경기개선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올해 총지출 규모는 지난해 본예산(656조6000억원) 대비 2.5% 느는 데 그쳤다. 국회 심의과정 중 4조1000억원의 감액분만 반영되면서 지난해 총지출 증가율(2.8%)에도 못 미친다. 긴축예산 여파로 올해 경제정책방향에는 대대적인 소비 진작책이 담기지 못했다. 대신 상반기 추가 소비분에 대한 20% 추가 소득공제 등 소규모 감세조치,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 정도만 포함됐다.

 

이러한 제약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긴급복지 제도 예산은 올해 3501억900만원이 책정돼 지난해 본예산(3584억9400만원)보다 2.3% 삭감됐다. 국회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에서 498억9100만원이 증액됐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증액 심사가 생략되면서 삭감된 정부안이 최종 반영됐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불확실성 시대, 한국 경제 위기 진단과 대안’ 간담회에서 “내수경제는 매우 심각한 침체국면에 있고 소상공인과 자영업 등 민생경제는 코로나 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며 “복잡한 정국에도 추경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 재판 등이 신속히 진행되지 않는다면 민생경제 위기는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