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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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쉼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기사입력 2025-01-10 00:02:49
기사수정 2025-01-10 00: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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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산문 청탁을 받았다. 어려운 주제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금방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만 고르기가 쉽지 않은 것일까. 물론 곧바로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복숭아를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일반적인 음식의 범주 안에서 답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나. 미역국도 좋아하고, 냉이된장국도 좋아하고, 떡볶이도 좋아하고, 냉면도 좋고, 피자도 좋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하기는 애매한데. 아마 널리 알려진 모범답안은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혹은 할머니가 해준 음식 등 이른바 추억의 음식일 것이다. 유명 요리사들만 해도 하나같이 엄마 손맛이 들어간 어린 시절의 평범하고 소박한 음식들을 꼽지 않던가.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들은 늘 심심했다. 좋게 말하면 자극적이지 않다거나 담백하다거나 건강한 맛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어린 마음에 그것은 한마디로 맛이 없었다. 가뜩이나 아기였을 때도 잘 안 먹었다는 나는 어린이가 된 후에도 일관성 있게 먹는 일에 통 흥미가 없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진심으로 맛있게 먹은 음식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김밥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다른 친구들이 싸온 음식이 내 엄마의 음식보다 맛있었는데 운동회나 소풍 때 먹는 김밥만큼은 엄마 것이 가장 맛있었다. 여느 때와 달리 심심하지도 않았다. 김밥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원체 많으니 저절로 간이 되어 평소 음식보다 맛있게 느껴졌을 터임을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그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도 신기하다. 세월이 흘렀어도 김밥 재료는 거기서 거기일 텐데, 나도 그 재료들로 이따금 김밥을 싸는데, 그런데 어디서 어떤 김밥을 먹어도 엄마 것과 같은 맛을 찾을 수는 없다. 알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데 나에게만 특별할 그때 그 김밥을 엄마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생각난 김에 친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제 팔십이 다 되신 엄마, 김밥 싸는 일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낼 만큼 쇠약해지신 엄마는 일찌감치 주무시는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괜찮다. 일단 글부터 쓰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이라고. 그러고 나서 내일 다시 전화 드려봐야겠다.


김미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