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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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개인전 ‘Voiceless Voice’

기사입력 2025-01-30 09:08:12
기사수정 2025-01-30 0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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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사멸과정에 관한 메모리즈 프로젝트 영상작품 전시회
김우진 신작 ‘그리고 나는 짧은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Part U’
일본 오키나와의 사라진 언어 우치나구치를 추적, 제주 4·3 떠올라

차와 다과상이 놓인 무대 위로 손님 역할의 배우들이 입장한다. 이들을 초대한 작가 김우진은 일본 오키나와의 사라진 언어 우치나구치를 추적하며 수집한 다양한 자료와 관련자 인터뷰 내용으로 만든 문답 형식의 시나리오를 건넨다. 이렇게 촬영된 영상 속 손님들은 얼굴 아랫부분 몸의 행위만 보이는 낯선 프레임 안에서, 익명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반면 화자는 배우가 아닌, 우치나구치의 기억을 가진 실제 인터뷰 대상자의 음성으로 대체되어, 언어의 멸종 과정과 함께 당시 이데올로기의 횡포와 차별화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나는 짧은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Part U’ (1)

영상은 인터뷰가 진행됨에 따라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아주 조금씩 흑백으로 전환되는데, 우치나구치 사멸을 묘사하는 부분부터는 완전히 흑백이 된다. 영상의 내러티브는 외형상 연극 형식을 차용하지만 인터뷰 내용과 발화자의 음성이 실제 사건의 기억을 바탕으로한 만큼 직관적이고 사실적이다.

작가는 손님들에게 “우치나구치로 당신의 오늘 하루를 얘기해주세요”라고 요청한다. AI 번역기로 번역되지 못한 발화된 답변들은 그저 소리나는 음가로만 결과값을 보여주면서 연극과 함께 영상작품 ‘그리고 나는 짧은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Part U’는 마무리된다.

 

사건의 공간이 되는 오키나와는 19세기 일본에 병합된이래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강요당하며 무시와 차별을 받아오다가, 1945년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전장터가 되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종전 후 점령군인 미국의 수탈과 파괴가 자행되었고, 1972년 일본으로 반환된 후에도 군사기지 범죄와 환경파괴로 아픔의 역사를 겪었다.

특히 이 시기엔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 언어 탄압과 무작위 살상 등 참극이 일어났다. 이쯤 되면 관람객들은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참담한 제주 4.3 사건과 함께 제주어의 사멸과정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제주 해녀와 고유한 직업 문화, 그리고 제주어의 소멸을 해녀들이 한 명씩 페이드아웃 되어 사라지는 영상언어로 처리해 내러티브를 극대화한다. 이어 동아시아의 또 다른 장소 홍콩에서도 이데올로기 아래 홍콩어의 통제와 사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는 디지털 멸종위기의 언어들을 추적하면서 언어 다양성의 감소로 불거지는 부정적 문제를 환기하고 있다.

 

김우진은 “연구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에 700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그 중 극소수만이 성공적으로 디지털화 되었거나 그 과정에 있다”며 “정보를 얻기 위해 힘을 가진 언어들을 습득하고 사용하는 사이, 디지털화에 실패한 언어들은 현실 세계에서도 소멸이 가속화되고 소수언어로 작성된 유의미한 디지털 정보도 사라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짧은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Part U’ (2)

‘그리고 나는 짧은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 Part U’는 2채널 비디오 신작이다. 오키나와 거리를 훑으면서 작가의 독백과도 같은 시구로 시작한다. 작가는 영상의 한쪽은 극장의 무대로, 다른 한쪽은 관객이 대본을 텔레프롬프터 형식으로 읽을 수 있도록 배치해, 언어의 멸종이라는 사건을 연극적 허구와 함께 교차 편집하고 있다. 

 

김우진은 그동안 하나의 국가, 사회, 민족이 권력과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들로 개인의 사적이고 일상적인 영역, 특히 학교나 가정교육 속에서 언어를 강제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메모리즈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되고 있는 유사한 사회현상과 함께 언어의 사라짐에 대해 다양한 관련자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지속해왔다.

“아이누어와 우치나구치에 대해, 나아가 제주어를 비롯하여 아시아의 언어에 대해 조사하고 인터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 역사, 현재 상황을 과연 내가 진정 이해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극장 그리고 무대 위 연극 구조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더 큰 부분을 우리가 얼마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무지 혹은 무관심으로 인해 어떤 세계들은 사라지고 있다.” (작가 노트 중) 

 

김우진의 영상작품 개인전이 ‘Voiceless Voice’라는 문패를 내걸고, 2월 13일부터 3월 29일까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씨알콜렉티브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