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에서는 분야를 나눠 가장 혁신적인 제품 또는 서비스를 선보인 기업에 혁신상을 수여한다.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열렸던 CES 2025에서는 전체 수상 기업 357개사 중 166개사가 국내 기업으로, 우리나라는 역대 최다 수상을 기록했다. 혁신상 수상 기업은 CES 전시 동안 관람객과 관련 업계 관계자의 관심을 더 받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수상 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자리를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마련했다. 이날 ‘CES 2025 혁신포럼’에 참석한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CES 2025는 우리 수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며 정부의 지원 방안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안 장관은 “우리 수출 중소·중견기업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전시·수출상담회, 무역사절단 파견을 추진하고,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특화 지원을 강화하며, 우리 기업의 혁신을 수출로 연결하기 위한 민관 총력지원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국내 중소·중견기업은 해외 진출 시 각종 애로사항이 있지만 자체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CES 혁신상 수상 기업들의 요구는 ‘수출 시장 맞춤형 정보 및 전략 지원’으로 요약된다. 23일 국내 주요 수상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올해 포부와 앞으로의 해외 진출 계획 등을 들었다.

◆책 못 읽는 아이부터 노인까지…웅진씽크빅 ‘북스토리’
웅진씽크빅은 30초만 특정인의 목소리를 들려줘도 그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북스토리’ 서비스를 개발했다. 책 내용을 인식하면 인공지능(AI)가 히브리어까지 32개 이상 언어로 번역해 설정된 목소리로 읽어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전용 기기나 스마트폰 화면에는 책 내용에 어울리는 그래픽 효과나 노래가 나오고, 구연동화처럼 목소리 연기를 하기도 한다.
최환석 웅진씽크빅 DX사업본부 선임연구원은 “반복해서 책을 읽어달라 하는 아이 때문에 피곤한 부모를 위해 개발을 시작했다”며 “스마트폰 사용이 늘며 출판시장이 위축되는데 더 많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도록 개발됐고, 더 나아가 책을 혼자 읽기 힘든 시청각 장애인과 노인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 서비스 제품으로 올해 AI 분야 CES 최고혁신상을 받은 웅진씽크빅은 구독형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다른 기기 없이도 스마트폰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책 페이지를 카메라로 스캔하면 AI가 인식해 원하는 언어와 음성으로 읽어주는 서비스를 해외 시장에 수출한다는 구상이다. 1차로 목표하는 시장은 미국과 대만, 홍콩·마카오 등 중화권이다.
최 선임연구원은 수출 시 고충으로 현지화 작업을 첫 번째로 언급했다. 국가별로 정기결제 관련 법이나 저작권, 연령제한, AI 활용 규정 등이 달라 국가별 맞춤형 작업이 필요하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인력 사정등으로 자체적으로 일일이 준비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최 선임연구원은 “북스토리 같은 플랫폼 재화는 국가 정책에 맞춰 모든 걸 수정해야 하지, 하나의 통합모듈로는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물리적 제품 수출을 중심으로 지원해 이제는 정부 지원이 무형 재화에도 더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 어깨는 몇 도나 틀어져 있을까?…팀엘리시움 ‘바디닷피트니스’
운동을 시작할 때 대부분은 체성분을 알아보는 인바디를 측정한다. 인바디가 신체 내부를 잰다면 팀엘리시움은 3D카메라로 신체 외관을 재고 AI로 분석하는 스마트 체형분석 기기 ‘바디닷피트니스’를 만들어 피트니스 분야에서 CES 2025 혁신상을 받았다.
이미 국내 정형외과, 한의원 등에서 의료 목적으로 기기를 만들어온 팀엘리시움은 피트니스 라인업으로 기기를 새롭게 보완했다. 김원진 팀엘리시움 최고경영자(CEO)는 “눈으로 봤을 때는 올라간 어깨, 거북목의 정도, 골반 틀어짐을 정밀하게 알 수 없지만 3D카메라로 촬영해 시뮬레이션을 하면 정량적으로 보인다”며 “피트니스나 필라테스 센터 등에서 상담용으로 인바디와 함께 많이 측정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만 병원 400여곳, 운동시설에 지난해 11월부터 30곳 넘게 제품을 보급했다는 김 CEO는 해외시장을 엿보고 있다. 그는 “올해 CES에 참가해 글로벌 바이어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며 “미국, 일본, 독일 세 시장에 우선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CEO에게 해외 진출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우리 제품을 누굴 통해 어느 매장으로 팔지’였다. 이번 CES에 참가한 소감으로 그는 나라마다 관심의 초점이 다르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거북목, 라운드숄더에 관심이 크다”는 김 CEO는 “그런데 미국은 자신이 얼마나 살쪘는지 비만 정도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고, 체형 관리뿐 아니라 스파 프랜차이즈 등 마사지 회사도 CES 부스를 찾아왔다”며 “일본은 화장품이나 의류 회사에서도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 CEO는 “근골격계 질환은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만큼, 기기가 체형분석 기능에 더해 어떤 스트레칭이나 체형 관리 솔루션이 필요할지 연동해 소개하는 개인 맞춤형 AI 트레이너가 될 계획”이라고 앞으로의 목표를 밝혔다.

◆망치로 트럭 타이어 점검은 그만…반프 ‘아이센서’
화물차 운전기사나 화물차 관리 회사를 주 고객으로 하는 기업 반프는 2021년 창업해 지난해 CES 2024에서 첨단모빌리티 분야 혁신상을 받았다. ‘타이어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회사’라고 자사를 소개한 유성한 반프 대표이사는 “타이어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면 AI를 이용해 타이어 상태를 분석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트럭은 일반 승용차보다 타이어 상태를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트럭은 하중이 많이 실려서 공기 주입이 자주 필요한 데다 복륜(이중 바퀴) 구조상 안쪽 타이어 상태를 알기는 더 어렵다. 바퀴 각도가 살짝 틀어지면 운전자는 알 수 없지만 차 연비에는 1도에 15% 수준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제때 관리하지 못한 탓에 타이어 문제로 트럭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기업은 없었다.

유 대표이사는 “트럭 사고가 워낙 많지만 관리 방법은 트럭 기사가 망치로 타이어를 두드려 소리를 들어보는 수준에서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며 “어느 나라에서도 트럭 타이어 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할 방법이 없어 나은 관리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아이센서를 개발한 배경을 설명했다.
유 대표이사는 “미국은 트럭 운행이 국내보다 많아서 초기부터 수출을 추진했다”며 기업 평판을 강조했다. 그는 “래퍼런스가 중요하다”며 “어느 기업이든 기술 수준이 우수한지만 따지지 않고 검증된 곳과 일하고 싶어한다”고 지난 4년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해외 진출 시 코트라 무역관을 통한 정보와 CES 지원 등을 잘 이용하고 있다”며 “전 세계 타이어 관리 시스템에서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