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 스토브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FA) 미아’가 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흘러나왔던 ‘어썸킴’ 김하성(30)의 새 둥지가 드디어 정해졌다. ‘저연봉 고효율’의 대명사 탬파베이 레이스와 2년 총액 2900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2025시즌을 마치면 ‘옵트아웃’(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FA 자격 재취득)도 가능해 ‘FA 재수’도 가능한, 김하성 친화적인 계약이라는 평가다.

ESPN, MLB닷컴 등 미국 현지 매체들은 30일(한국시간) 김하성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탬파베이 레이스와 2년 총액 2900만달러(약 420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계약 첫해인 2025년에는 1300만달러를 받고, 2026년에는 1600만달러를 수령하는 조건이다. ESPN에 따르면 김하성은 올해 325타석에 들어가면 200만달러를 추가로 받는 조항도 계약 조건에 있다. 아울러 올 시즌만 뛰고 옵트아웃을 선언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돼 있어 김하성은 올 시즌만 탬파베이에서 뛰고 다시 FA 시장에 나올 수도 있다. 내년 시즌에도 김하성은 30대 초반에 불과해 올 시즌 제 기량을 펼쳐 보인다면 1억달러(약 1440억원) 이상의 보장받는 장기계약도 가능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몰마켓’ 구단인 탬파베이가 김하성에게 지불하는 연봉 1300만달러는 팀 내 최고액이다. 그만큼 김하성을 ‘귀하신 몸’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김하성의 FA 계약은 잭 에플린(2023년, 3년 4000만달러), 찰리 모튼(2018년, 2년 3000만달러)에 이어 탬파베이 구단 역사상 세 번째로 큰 FA 계약이다. 에플린과 모튼이 투수임을 감안하면 1999년 그렉 본(4년 3400만달러)과의 FA 계약 이후 야수로는 최고 금액 계약이다.


그간 김하성의 행선지 후보로 좀처럼 언급되지 않았던 탬파베이가 김하성을 영입한 이유로는 2023년 8월 미성년자 의제강간 혐의로 제한선수 명단에 오른 완더 프랑코의 이탈이 꼽힌다. 메이저리그 입성 전부터 유망주 랭킹 전체 1위에 올랐던 프랑코는 2021시즌에 데뷔해 70경기 타율 0.288 7홈런 3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10으로 대성 가능성을 보였다. 이에 탬파베이는 11년 1억8200만달러(약 2625억원)의 장기 연장계약을 맺었다. 스몰마켓으로 좀처럼 큰 규모의 계약을 꺼리는 탬파베이가 프랑코를 향후 10년 이상 팀을 책임지는 중심 선수로 여겼단 얘기다. 그런 프랑코의 예기치 못한 이탈 이후 탬파베이는 유격수 자리에 여러 선수들을 기용했지만, 마땅치 않았다. 그 결과 이번 FA 시장에서 김하성을 영입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KBO리그 시절 30홈런 이상을 때려낼 수 있는 ‘거포 유격수’였던 김하성은 2021년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추진했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4+1년 보장 2800만달러, 최대 3900만달러의 계약을 맺고 빅리거가 됐다.
샌디에이고에서 김하성은 4시즌 통산 타율 0.242, 47홈런, 200타점, OPS 0.706으로 활약했다. 타격 성적은 리그 평균이지만, 유격수는 물론 3루수와 2루수까지 내야에서 1루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최고 수준의 수비 실력을 뽐냈다. 이러한 포지션 범용성을 인정받아 2023년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골드글러브 수상은 김하성이 최초다.


한 시즌에 15~20개의 홈런포를 때려낼 수 있는 수준급 펀치력과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빼어난 수비력을 앞세워 김하성은 2024시즌을 마치고 FA 시장에 나오면 총액 1억달러는 너끈히 넘기는 대박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막판 주루 도중 오른쪽 어깨를 다치면서 모든 게 어그러졌다. 재활을 마치고 올해 5월에야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김하성에게 장기 계약을 제시하는 팀은 없었다. 미국 언론은 김하성이 시즌 개막 이후 계약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탬파베이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계약에 급물살을 탔다.

탬파베이는 MLB를 대표하는 '저비용 고효율' 팀이다. 1998년 창단해 팀명을 데블 레이스로 유지하던 2007년까지는 메이저리그 최약체를 면치 못했지만, 팀명을 레이스로 바꾸자마자 리그를 호령하는 강팀이 됐다. 2008년 팀 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저연봉 고효율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불펜 투수를 선발로 등판시켜 1이닝만 소화하게 하는 ‘오프너’ 전술, 스타 선수를 키워 다른 팀에 팔아 다수 유망주를 수급하는 등 스몰마켓 팀다운 팀 전력 극대화를 통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7시즌 동안 9번이나 가을야구 무대에 진출했다. 2008년에 이어 2020년에도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