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철학자들/ 신동만/ 추수밭/ 1만8000원
“야생은 철학자, 스승, 치유자의 모습으로 다가와 인생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28년간 자연을 관찰하는 일을 해온 자연환경 전문 PD 출신인 저자가 ‘야생의 철학자들’에서 하고자 하는 핵심 이야기이다. 자연에서 배운 생존과 공존의 철학을 들려준다.
어떤 일을 실행하고 빨리 결과를 얻고 싶어서 자꾸만 조급해지거나 몇 번을 시도해도 실패할 때의 좌절, 중요한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고뇌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다. 지치고 힘들 때 버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자연에서 찾고 있다. 척박한 자연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동식물은 극한의 순간에도 인내하며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다. 적응하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자연의 끈질긴 생명의 힘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야생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은 사고의 근육을 키워주는 철학자이자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깊이 파인 상처를 보듬는 치유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동안 뷰파인더로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 동식물의 모습에서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준비’, ‘적응’, ‘기다림’, ‘끈기’, ‘신뢰’ 등 12가지 인생의 진리를 제시한다. 사계절 변화무쌍한 시간의 흐름 속에 동식물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분투, 위대한 본능과 사랑으로 연결된 짝짓기와 양육, 공생의 관계 등을 들려주며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삶의 기둥이 되어줄 통찰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수리부엉이는 겨울에 짝짓기를 하려고 여름부터 철저하게 ‘준비’한다. 산수국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헛꽃을 피우고 토질에 따라 꽃색을 바꾸며 사는 곳에 ‘적응’한다. 매미 약충은 수년 동안 땅속에서 ‘기다리다’ 날개를 펴기 위해 며칠 동안 세상 밖으로 나온다. 쇠제비갈매기는 큰비를 맞으면서도 알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끈기’ 있게 부둥켜안는다.

저자는 동식물의 생존과 공존을 담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는 ‘기다림의 미학’이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왕소똥구리가 해를 등지고 소똥 경단을 굴려 가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13일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 지루한 순간에 저자가 터득한 삶의 지혜는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으면 반드시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텐트 안에서 동물을 기다리는 행위를 ‘명상’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온 에너지를, 기다리는 동물에 투사하고 나면 잡념이 사라지고 ‘참 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모기에게 피를 빨리고 손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관찰과 기다림에 집중함으로써 일을 ‘노동’이 아니라 ‘명상’으로 승화한다. 결국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깨달음은 그가 관찰한 동식물에게서 발견한 생존과 공존의 지혜란다.
책에선 깊은 숲속의 야생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생활 주변에서 얼마든지 야생을 관찰하고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한번 야생의 존재에 눈을 뜨고 나면 수많은 생명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저자는 자신의 아파트 주변에서도 5년간 40종에 이르는 새를 관찰했다. 마음을 열고 관점을 달리하면 사방에서 야생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독자에게 전한다.
책을 쓸 때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중요한데 저자는 수리부엉이 울음소리인 “부엉∼”을 맨 앞에 세우고 글을 풀어간다. 수리부엉이는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야행성 조류 중 가장 큰 텃새다. 수리부엉이 전문 박사인 저자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가 수리부엉이다. 책은 수리부엉이, 황조롱이, 고라니 등 다양한 동물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동물의 생태적 설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태 담론과 인생론을 함께 버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생태 서적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