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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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의시네마트랩] 데이비드 린치와 미국 영화

기사입력 2025-01-30 23:44:30
기사수정 2025-01-31 03: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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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에는 컬트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린치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파벨만스’의 마지막에 주인공 존 파벨만이 자기가 존경하는 영화감독 존 포드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존 포드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하지만 주인공에게 스크린에 지평선을 어느 위치에 놓느냐를 두고 본인의 비결을 알려준다. 흥미롭게도 스티븐 스필버그는 존 포드 역에 전문적인 배우 대신 데이비드 린치를 기용했다.

존 포드는 스티븐 스필버그뿐만 아니라 마틴 스코세이지도 존경했던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미국영화의 최고 걸작은 흔히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을 꼽지만 서부영화라는 장르와 거기에 담긴 개척정신이라는 오늘날의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감독은 존 포드이다. 그런 존 포드 역할에 존 포드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감독인 데이비드 린치를 기용한 것은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존 포드는 화면에 자연풍광을 어떻게 잡느냐를 중시하는 풍경화의 전통을 보여주는데, 데이비드 린치는 풍경화보다는 개인의 내면과 꿈을 표현하는 초현실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어느 쪽이든 둘 다 영화도 회화의 연장선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존 포드가 미국의 팽창과 국가 형성 과정을 다룸으로써 미국의 건국 신화를 만들어냈다면 데이비드 린치는 그렇게 만들어진 현대 미국인들의 무의식에 담긴 불안과 좌절을 백일몽과 악몽의 이미지로 그려냈다. 특히 1980년대에 나온 주요한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인 ‘블루 벨벳’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미국 중서부 도시에 사는 중산층도 언제든지 폭력과 야만에 노출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이렇게 평온한 마을에 폭력성과 비밀이 은폐되어 있음은 이후에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트윈 픽스’로 이어진다. 2001년에 만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꿈꾸는 배우 지망생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처럼 할리우드의 어두운 측면을 다룬 작품으로는 빌리 와일더의 1950년작 ‘선셋 대로’가 있다. ‘선셋 대로’는 빚에 쪼들리는 무명 시나리오 작가가 무성영화시대 스타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누아르 영화이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배우 지망생의 잔인한 백일몽과 좌절을 그린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정반대로 할리우드를 낙관적으로 그린 작품이 데이미언 셔젤이 고전적인 뮤지컬의 이미지를 혼성모방한 ‘라라랜드’이다.

데이비드 린치가 만든 작품 중 흥행과 비평에서 실패한 작품은 1984년작 ‘듄’이다. 최근에 드니 빌뇌브 감독이 티모테 샬라메와 젠데이아를 기용해서 2부작으로 나눠서 만들어서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했지만 데이비드 린치의 1984년작은 원래 4시간이 넘는 대작이었으나 제작사에 의해 2시간으로 무리하게 편집되어서 감독의 원래 의도대로 나오지 못했다. 그 당시에 축약하지 않고 2부작으로 나누었으면 린치의 온전한 의도를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광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