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색채와 굵은 윤곽선, 중후한 톤이 돋보이는 윤중식(1913–2012)의 회화는 6·25 실향민의 상실감과 그리움이 근간을 이룬다. 대동강, 비둘기, 석양, 농촌 풍경 등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깊은 향수를 조형적으로 순화한 예술적 기록”이란 평가를 받았다. 잊혀 가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환기시켜준다. 작가는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상수(上壽 ·100세)’전을 개최할 때, 작고 직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그림에 몰두하며 창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었다. 유족들은 그의 작품들을 기증했다.
평양 출신의 윤중식은 1939년 일본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제2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했다.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과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박고석(1917–2002)은 1968년부터 산행을 통해 ‘자연’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북한산, 설악산, 백양산, 지리산 등을 여행하며 사계절을 화폭에 담아내던 그는 강렬한 색채 대비와 힘찬 필치로 한국의 명산이 내뿜는 강렬한 기운을 전했다. 1970∼1980년대에는 원근법을 무시한 공간 구성과 두터운 유화물감의 질감으로 산의 웅장함과 생명력을 표현하며,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확립해 나갔다.
평양 숭실학교를 나와 1939년 일본대학 예술학부 미술과를 졸업한 뒤, 귀국해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과 친목을 쌓았다. 특히 이중섭, 한묵과의 깊은 우정은 그의 예술적 여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대 아카데미즘에 염증을 느낀 그는 1957년 유영국, 황염수, 이규상, 한묵 등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하면서 새로운 미술을 모색했다.

임직순(1921–1996)은 빛의 대비와 강렬한 색면이 조화를 이루는 안정된 구도를 추구했다. 자연 풍경, 꽃과 여인을 주요 소재로 삼아 그 속에 내재된 생명력을 탐구했다. 직접 현장에 나가 자연에서 얻은 감동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고, 내적인 색감을 사용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정감 있게 담아냈다. 1957년 제6회 국전에서 ‘좌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색채 안에 빛의 개념을 더해 회화적 자율성과 심미적 확장을 이루며, 자연적인 주제를 넘어선 깊은 내면세계를 구현한 예술”로 평가받는다.
충주에서 출생한 그는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일본미술학교에서 공부하며 회화적 기초를 다졌다. 귀국 후 1961년부터 오지호의 뒤를 이어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광주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이대원(1921–2005)은 모노크롬, 미니멀리즘 경향이 주류를 이루었던 1950∼1960년대 한국 화단에서 한국의 산과 들, 나무, 연못, 돌담, 과수원 등 친숙한 대상을 그리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쳤다. 풍부한 원색과 짧고 연속적인 붓 터치로 형태와 윤곽을 그리는 ‘이대원표’ 방식을 견지하면서 자연미를 포집했다. 단순한 자연의 재현을 넘어, 자연의 생명력과 삶의 즐거움을 구현해내, 감각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회화적 경험을 전한다.
경기도 문산에서 출생한 그는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조선미술전람회, 국전에 입선하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1950년대 후반 독일에서 세 차례 전시회를 열어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67∼198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홍익대 초대 미술대학장을 거쳐, 총장을 역임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4인의 작품들을 한자리 모았다. 2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기획전 ‘한국 구상회화 4인전 : 윤중식, 박고석, 임직순, 이대원’에는 이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70∼1980년대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나서서 관람객을 반긴다. 현대화랑과 작가들이 맺어온 깊은 인연을 바탕으로, 각 작가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들여다보고 미술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자리다.